손주를 돌봐주는 데이케어 하는 분이 코로나가 걸려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부부가 일하는 젊은 부모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다. 딸은 엄마가 힘들다며 시댁과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위와 딸이 번갈아 쉬고 안 되는 날은 아침마다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마음은 분주했지만 할 일을 내려놓고 손주와 노는 시간은 나를 웃게 해주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갓 돌 지난 손주는 아장아장 걸으면서 말보다 손짓을 하는데 “응” “응?” “응~~”이면 대화가 통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맑은 눈을 나도 가졌던 시절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연세가 더 많으신 분들이 보시면 아직 젊어서 잘 모른다고 하실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세상도 변했지만 나도 많이 변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김동길 님의 글을 보면 참으로 공감이 된다.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알고 싶은 게 많아지고, 모든 게 이해될 줄 알았는데 이해하려 애써야 하고, 무조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른으로 보이기 위해 긴장해야 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 공감이 되는 글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보면서 어른이 좋아 보였고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손주가 넷이나 되고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할머니로, 친정엄마로, 시어머니로 사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보지 않아야 한다. 말해주면 ‘그렇구나’ 공감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이해가 안 되어도 요즘 시대는 그러려니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한다. 손주들과 놀 때는 눈높이를 맞춰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의 맑은 영혼과 순수함을 배워야 한다. 배움은 끝이 없고 성품은 온유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어진다는데 끊임없이 나를 내려놓고 배우면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난 멋지게 나이 들기를 꿈꾼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 고집스럽다기보다 인자했다고, 화통하다기보다 부드러웠다고, 화난 얼굴보다 미소 짓는 얼굴이 기억난다고, 이래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맑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나온 세월이 그랬듯이 살아갈 세월이 나를 멋지게 변화시키면서 그렇게 나이가 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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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 /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