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007시리즈 ‘여왕폐하의 007’ 두 번째 본드역의 조지 레이젠비
사진 제공 Azabra Photo
올해는 살인면허 번호 007의 소유자인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본드 시리즈 첫 편 ‘닥터 노’가 개봉 된지 6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해 첫 번째 본드 역의 션 코너리에 이어 두 번째 본드로 나온 조지 레이젠비(83)를 오디오 인터뷰 했다. 코너리는 시리즈 다섯 번째인‘유 온리 리브 트와이스’를 마지막으로 일단 007 번호를 반납했는데 레이젠비가 시리즈 여섯 번째인‘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에서 시리즈 바톤을 물려받은 것. 그런데 ’여왕 폐하의 007‘은 호주 태생인 레이젠비의 유일한 본드 역으로 이 영화는 본드가 결혼을 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비평가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돼 지금은 역대 007 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든 것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LA에서 인터뷰에 응한 레이젠비는 굵은 저음으로 가끔 큰 웃음과 함께 유머를 섞어가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영화 007시리즈 ‘여왕폐하의 007‘’의 한장면.
-본드 역에 선정된 과정과 소감은 어땠는가.
“나는 호주에 있을 때 자동차 판매담당 매니저였다. 그러다 조부모의 고향인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벤츠 판매상에서 일했는데 고객 중 한명이 유명한 모델 사진사였다. 그가 내 사진을 찍어 모델회사에 보내면서 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모델이 되었다. 이어 친구의 소개로 런던 최고의 배우 선정(캐스팅) 에이전트인 매기 애봇을 만나게 되었다. 매기는 당시 본드 역을 맡을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오만과 자신감을 가져 본드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드영화를 찍는 파인스튜디오에 불려갔는데 처음에는 관계자들이 내가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스크린 테스트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감독인 피터 헌트가 원해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는 런던 교외에 있는 시리즈 제작자인 해리 살츠만의 집에서 무려 4개월에 걸쳐 했는데 그 동안 내 악센트와 걸음걸이 등을 다 바꿔 놓았다. 난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어 영화의 미국 제작사인 유나이트 아티스츠가 나의 격투 연기를 보자고 요구하면서 러시아 레슬링선수와 맞대결을 시켰다. 난 그 것이 스턴트 격투가 아닌 진짜 격투인줄로 알고 그 레슬링선수를 단숨에 때려 누였다. 그 걸 보고 해리가 내게 와 ‘너를 본드로 선택할 텐데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라도 누설하면 없던 일로 할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그 얼마 후 기자회견이 있었고 내가 본드로 소개됐다.”
-왜 단 한편으로 본드 역을 끝냈는지.
“우선 나는 본드 역은 션 코너리 것이고 나는 본드 역을 맡아도 크게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다음으로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같은 록그룹을 무대에 등장시킨 로난 오라일리가 내 매니저가 되기를 자청하면서‘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가 유럽에서 서부영화에 나와 큰돈을 벌고 있으니 당신도 유럽에 가서 영화 두 세편에 나오면 일 년에 떼돈을 벌수 있다’고 말해 그 의 말대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려고 했으나 매번 내가 이미 다른 영화사와 계약을 맺은 배우여서 쓸 수가 없다는 바람에 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스키 추격 장면을 비롯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스위스 알프스에서 찍었는데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스키 추격 장면의 대부분은 내가 직접 했다. 난 션이 격렬한 액션 장면에서는 스턴트를 쓰는 줄 몰랐다. 그랬더니 스턴트 감독이 영화의 감독인 피터 헌트에게 ‘저 친구 저러다가 크게 다치지’라고 말했으나 헌트는 ‘괜찮아 아무도 아직 저 친구를 본 사람이 없으니까. 다치면 다른 사람 쓰면 되지’리고 말했다는 소리를 듣고 웃어 넘겼다. 여하튼 한 3주간 스위스 알프스에서 영화에 나온 열명 정도의 아가씨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아침 산 아래 마을로부터 헬기를 타고 영화를 찍는 산꼭대기 까지 올라가 영화를 찍고 저녁때가 되면 마을로 내려가야 된다며 헬기를 요청했다. 난 배우는 헬기를 요청할 수 없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나 제작진은 날 행복하게 해주려고 헬기를 불렀고 난 여배우 중 한 명과 함께 마을로 내려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신이 한 스턴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다. 다른 스턴트맨들이 차례로 먼저 뛰어내리고 난 맨 마지막에 뛰어 내렸는데 공중에 뜬 헬기에서 스턴트맨이 뛰어 내릴 때마다 헬기는 4피트 정도 높이 올라가곤 한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뛰어 내릴 때는 헬기가 너무 높이 떠 거의 두 다리르 다 부러 트릴 뻔 했다. 난 코너리가 이런 스턴트를 직접 하는 줄 알았다. 난 그저 감독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위험한 스키 추격 장면을 전부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스키를 타고 카메라 앞을 지날 때나 눈썰매 추격 장면 그리고 격투 장면 등은 다 내가 직접 했다. 때로는 직접 얻어맞기도 했으나 난 그 것이 다 배우가 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최근의 본드 영화들을 봤는가.
“봤다. 그러나 내 영화가 시리즈 최근작(노 타임 투 다이)보다 훨씬 낫다. 코너리의 본드 외에 다른 본드는 별로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 코너리의 본드를 봤을 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밖에 다른 본드들은 모두 다 나만 못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명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수염을 기르고 장발을 하는 것으로 그 것에 대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모임에서도 내 이름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나인 줄을 몰랐다. 난 ㄱ냥 보통 사람으로 지냈다. 나의 가족들은 배우가 무엇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신이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언제인가.
“유명 토크 쇼 사회자 자니 카슨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혼자 뉴욕에 갔을 때 무작정 그의 스튜디오엘 찾아갔었다. 난 그와 만나려면 에이전트를 대동하거나 선약을 해야 하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자니가 날 그 즉시로 쇼에 내보냈는데 그는 방청석에 앉고 내가 쇼를 독차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자랑을 냅다 했는데 그 때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줄을 알아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명해지니 아무데나 갈 수 있고 또 무슨 일이라도 할 수가 있더라. 특히 식당 예약이 쉬웠다. 모델 때는 예약이 어려웠는데 제임스 본드가 되다보니 제일 좋은 자리를 주더라.”
-오만 때문에 본드로 선택됐다고 했는데 그 오만은 어디서 온 것인지.
“션이 영화에서 보여준 오만에서 얻은 것이다. 다른 배우들에게선 그런 오만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 스크린 테스트 기간은 영화사상 가장 오랜 것 중의 하나로 알려졌는데 거기서 내가 보여준 오만한 태도를 다른 배우들은 따라 올 수가 없었다.”
-여왕 폐하의 007로서 최근 타계한 여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본드 역의 배우들과 함께 여왕을 만난 적이 있다. 여왕은 내게 악수를 청했으나 별로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본드가 아니었다면 여왕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끝에 당신이 막 결혼한 테레사(다이애나 릭)가 당산의 천적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의 총에 맞아 죽자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데 천하의 본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이 영화 하나 뿐일 줄로 아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눈물은 진짜로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다. 그랬더니 감독이 나더러 ‘제임스 본드는 울지 않아. 눈물 흘리지 마’라고 말했다. 다이애나와는 가끔 함께 웃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그다지 정다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나를 정숙한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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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