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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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63)

2022-11-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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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사람들

미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한 편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길에서 마주치거나 엘리베이터에 같이 있게 되면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미국에서 오래 산 한인이 잠시 한국에 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이 있게 된 처음 본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 사람 뭐지? 날 아는 사람인가?’라는 표정을 지어서 무안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친절을 기본 사양으로 장착한 것 같은 미국 사람들이기에 우체부에게도 많은 환대를 베푼다. 가끔 ‘고마워.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우편물을 배달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우체부로서 기쁨이 넘친다.
우체부가 되어서 받은 가장 큰 친절과 환대는 눈 내린 후에 받은 것이었다. 일하는 지역인 버지니아 북부는 북위 38도이다. 이곳 기후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사계절 뚜렷하고 겨울에는 눈이 온다. 눈 내린 후에는 우체부의 고난이 시작된다. 발이 눈에 빠지기 때문에 그리고 미끄러질 위험 때문에 이동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 언덕이라도 있으면 미끄러질 위험이 더 커진다. 우체부도 미끄러지고 우체국 배달 자동차도 미끄러진다.

그때 우체부를 위해 우체부가 다니는 길에 쌓인 눈을 치워 놓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우체부가 우편물 배달을 위해 다니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체부가 다니는 길 위에 쌓인 눈을 치워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집을 만나면 우편물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사람들을 위한 축복 기도를 한다. 친절과 환대를 받았으니 축복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한 번은 우편물 배달에 관해 서명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문을 열어준 사람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아… 한국분이세요? 잠깐만요.’ 하더니 사과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그날은 추석 턱밑이었기에 추석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배달구역의 주민으로부터 쿠키, 초콜릿 등 과자와 과일, 빵 따위를 받는다. 여름날에는 시원한 소다를 받기도 하고, 병물을 받기도 한다.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만든 깡통 콜라와 초콜릿 과자를 비닐봉지 안에 넣은 후 ‘점심 드신 후에 드셔’라고 적은 메모지를 붙여서 우편함에 넣어둔 집도 있었다. 그날 점심 식사는 황제가 부럽지 않았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시절이었다. 그 집 앞을 매일 지나면서 무화과가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날은 그 집 사람 둘이 나와서 무화과를 따먹고 있었다. 우편물 배달을 위해 지나가고 있었는데 ‘무화가 먹어볼 테야? 자 여기.’하면서 무화과를 따서 건네주었다. 맛나게 먹고 나서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데 ‘잠깐. 자 여기 더 받아. 일하다가 드셔.’라면서 몇 개 더 따서 건네주었다.

연말의 성탄절 즈음에는 감사의 뜻으로 선물이나 현금을 건네는 집들이 많다. 대개 현금을 주지만 우체부가 된 후 성탄절 즈음에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면도기였다. ‘우체부는 현금을 받으면 안 된다고 누가 그러기에 이것을 준비했어. 1년 동안 수고했어. 고마워.’라는 인사와 함께 받았다. 20여 년 이상 같은 배달구역을 맡아온 어떤 한인 우체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성탄절 즈음에 받는 팁이 1주일치 주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구역을 담당하던 우체부 에디가 지난해 은퇴했다. 에디가 마지막으로 배달하는 날이 언제인지 커뮤니티 이메일을 통해서 전파되었는데 그즈음에 선물을 건네는 집이 많이 있었다. 자기 집 우편함 옆에 은퇴를 축하한다는 입간판을 세워준 집도 있었다. 에디는 몹시 행복해했을 것이다.

우체부가 된 후 맨 처음 받은 호의를 아직도 기억한다. 백인 할머니가 준 차가운 깡통 콜라 한 개였다. 나이가 여든은 넘어 보이는 그 할머니를 보면서 백인 할머니의 몸단장을 알게 되었다. 하얀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는데 집에 있으면서도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옅은 화장을 곱게 했다.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볼에 붉은 기운이 도는 색조화장을 했다. 그 할머니에게는 사회보장국(SSA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보내주는 수표가 정기적으로 배달되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의 은근히 더운 날씨여서 살짝 땀을 흘려가면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이었는데 그날은 그 할머니가 문을 열고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려 있으므로 우편물을 집안으로 던지면서 “Mail.”(편지 왔습니다.)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할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후 차가운 깡통 콜라 하나를 가져왔다. 안 그래도 차가운 콜라 생각이 있었는데 그렇게 직접 받고 보니 무척 기뻤다. 우체부 되고 나서 맨 처음 받은 이 호의에 대한 좋은 기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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