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북쪽에는 동서로 40마일 정도 되는 샌타모니카 마운틴이 뻗어 있다. 할리웃 사인판과 그리피스 팍 등이 거기 있다. 이 산은 다저스 구장 인근에서 시작된다. 산 자락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 서울 남산도 남쪽에서 보면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뒤쯤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호텔 옆길은 남산으로 이어진다. 언덕길을 오르면 곧 하이야트 호텔이 나오고, 순환도로 건너에는 지금은 없어진 외국인 아파트가 있었다.
이 일대는 바로 아래쪽의 동빙고, 한남동 유엔 빌리지 등과 함께 용산 관내의 부촌이었다. 재벌가와 전직 총리의 사저, 당시 중앙정보부장 관사 등이 여기 있었다. 베이지색 벤츠를 타고 가던 단아한 노인을 본 것도 여기서였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었다. 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도 모여 있었다.
이태원은 한 때 거의 매일 오가던 곳이다. 군생활의 상당 기간을 외국 대사관 경비를 담당하는 공관 경비대에서 했기 때문이다. 해밀톤 호텔 앞에서 하차한 후 착착 줄 지어 언덕길을 올라 근무교대를 하곤 했다. 이태원 길에는 미 8군이 주 고객인 가게와 식당, 유흥업소 등이 있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때였으나 해밀톤과 하이야트 호텔 사이에는 밤 12시 지나 총알 택시가 오갔다. 밤 늦게 호텔과 호텔을 오갈 일이 있던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주택가를 쌩쌩 내달리던 총알 택시는 불법이었으나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대원들에게 지급된 것은 공포탄 3발이 전부였다.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은 모양만 있을 뿐, 실체가 없었다.
실제 사격을 해 보면 M1 소총 같은 요란한 소리가 났던 크고 묵직한 45구경 권총은 병따개로 쓰였다. 젖히면 소주병이나 환타 병을 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총알 택시를 잡으려면 돌멩이를 집어 던져야 한다는 말이 대원들 사이에 오갔다. 이태원의 공권력은 그 때부터 새고 있었다고 할까.
처음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는 비현실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이태원, 거기서 무슨-. 핼로윈 파티 이야기가 함께 들렸다. 한국서 무슨 핼로윈,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제빵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면서 불매운동이 벌어진 한국 기업이 있다. 보도된 산하 28개 업체의 이름을 보며 놀란 것은 한국어로 된 회사 이름이 3개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25개는 모두 외국어였다. 한국서 LA에 들어온 빵집들도 마찬가지다. 그중 하나는 영어만 알아서는 뜻을 알 수 없다. 이게 한국서 온 집이야? 무슨 뜻이야?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으나 여태 그 뜻을 모른다.
삼성이 SS, 현대가 HD그룹으로 바뀌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일 정도로 한국의 외국어 치우침은 도를 넘었다. 이런 생각이 겹치면서 ‘이태원 핼로윈’은 거부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곧 고쳐먹었다. 요즘 한국 초등학생들의 영어 발음을 떠올리자 더 그랬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조기 영어교육과 방과 후 영어학원 등이 일상화되고 있다. 해외 영어연수도 그렇다. 영어는 배우면서 그쪽 문화와 담을 쌓으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막상 그 젊은이들을 키워 낸 어른들이 그 세대를 모르고 있었다. 희생자 중에는 핼로윈이 대체 뭔가 처음 구경갔던 집순이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은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문화의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20% 가까이가 외국인, 대다수가 20대 유학생이라는 것은 한류의 국제화 결과일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문화에도 적용된다. 문화도 영향력이 커지면 요구되는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진다. 한국의 도덕적 의무가 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한류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지 않으려면 공유 가능한 선한 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 문화적 시스템도 뒷받침돼야 한다. 외국의 한류 팬들에게 한류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류가 생명력을 지속하고, 제2의 이태원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의 원칙을 말하지 않아도 한 사회의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다. 한국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하다. 대표적인 것이 정쟁이다. 다른 가치있는 일에 쓰였어야 할 에너지다. 올해 용산 관내에는 대통령실과 관저도 한꺼번에 들어왔다. ‘핼로윈 이태원’은 용산 경찰의 관심에서 우선 순위가 한참 밀렸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관계 공직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수준을 세계에 내보였다. 한국정치의 수준이기도 할 것이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바꿔 부른다고 참혹함의 정도가 희석되고, 비극의 크기가 줄어들 것인가. 그 속 보이는 발상과 졸렬한 논리는 외신의 조소를 자초했다. 생각지도 못한 참사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더 문제는 참사 후 자세다. 2차 대전 후 전쟁범죄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막상 한국서는 교훈이 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네 탓이요” 공방이 지리하게 이어질 것이다. 독 묻은 말의 칼날들이 오갈 것이다. 이럴 때는 한국 뉴스를 피해 사는 것도 방법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태원의 싱그러웠던 영령들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드린다. 이 어처구니없는 비통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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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