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 길 고생길

2022-11-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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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병들이 많이 있다. 이런 희귀한 병들 중 위버 증후군이라는 유전병이 있다. 1974년 데이빗 위버 의사가 처음 기술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병의 특징은 뼈가 과도하게 자라는 것. 성인이 되면 키가 7~8피트에 달한다.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현존하는 최장신 여성 역시 위버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터키의 루메이사 겔지(25)라는 이 여성의 키는 7피트 0.7인치.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그는 10대 때부터 기네스 기록 보유자로서 나름 유명인사이다. 외모 관련 긍정적 태도를 전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번도 해외여행을 못했다. 키가 너무 커서 비행기를 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기네스 측의 초청으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왔다. 터키 항공사가 좌석 여러 개를 떼어내고 스트레처를 설치하는 특별 배려를 했다. 덕분에 그는 이스탄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장장 13시간 편안하게 누워서 항공여행을 했다. 신체적으로 다르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련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비행기 여행의 계절이다. 추수감사절, 겨울방학,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가족친지들과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로 미전국의 공항은 붐빈다. 모처럼 가족들과의 만남에 마음은 한껏 들뜨지만 사실 항공여행은 고생길이다. 비싼 항공료는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탑승수속 마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이어 비행기를 타고 나면 하늘 위 고행이 시작된다. 비좁은 좌석에 끼어 앉아 꼼짝 않고 있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위버 증후군 사람들뿐 아니라 웬만큼 체격 큰 사람들이 앉기에 요즘 비행기 일반석은 너무나 비좁다. 연방항공청이 안전관련 규정을 만든 1967년 이후 보통의 미국인들의 체중은 30% 이상 무거워졌고 키는 1~2인치 커졌는데 비행기 좌석과 다리 뻗을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항공사들이 탑승 정원을 늘리려고 좌석들을 다닥다닥 배치한 결과이다.

각계의 지적이 빗발치자 연방항공청(FAA)은 최근 관련 의견수렴 행사를 진행했다. 수만건 쏟아져 들어온 의견의 대부분은 불평들. 좁은 공간에 다리를 끼우고 여러 시간 앉아 있으려면 너무 고통스럽다, 툭하면 무릎이 앞좌석에 닿고 다리가 옆 승객에게 닿으니 너무나 불편하다 등.

이런 지적들에 대해 항공사 측은 ‘편안함이나 편리함’의 관점이 아니라 ‘안전’에 집중해 달라고 항공청에 요구하고 있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연방 안전 기준은 비상시 모든 승객의 90초 내 대피. 지난 2019년 FAA는 실제로 기내에 사람들을 태우고 실험을 했고, 미국 인구의 99%는 대피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당시 실험 참가자 중에는 어린아이나 노인, 장애인이나 워커 사용자, 안내견 가진 시각 장애인들은 한 명도 없었고 짐 가방도 없었으니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비좁은 기내좌석은 안전 문제뿐 아니라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시간 꼼짝 못하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여섯 시간 비행기 타고 나면 다리가 얼얼하고 발이 퉁퉁 붓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즐거운 연말 여행, 기내에서 다리 좀 뻗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하늘 길은 고생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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