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이니쉐린의 반쉬즈’(The Banshees of Inisherin) ★★★★½ (5개 만점)
▶ 아름답고 평화로운 기운 안에 어둡고 가혹한 것을 품은 영화
파드렉(왼쪽)이 자기를 마다하는 친구 콤에게 옛 우정을 되살리자고 조르고 있다.
경쾌하고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로 시작하다가 서서히 어둡고 괴이할 정도로 유혈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다크 코미디로 일종의 우화와도 같은 드라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기운 안에 어둡고 가혹한 것을 품은 영화다. 제목의 반쉬는 죽음을 예고하는 여자의 혼령을 뜻하며 이니쉐린은 영화의 무대인 아일랜드의 허구의 섬 이름이다.
‘스리 빌보즈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를 감독하고 또 이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을 탄 아일랜드계 영국 감독 마틴 맥도나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는데 작품 안으로 빠져들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하지만 괴팍하고 재미있는 내용과 연기와 촬영과 음악 등 모든 것이 빼어난 작품이다.
영화에서 특히 볼만한 것은 오랜 절친한 두 친구로 나오는 콜린 패럴(베니스 영화제서 주연상 수상)과 브렌단 글리슨의 기막히게 멋진 화학작용과 연기다. 둘은 역시 맥도나가 감독한 범죄 스릴러이자 코미디 드라마인 ‘인 브루지스’에서도 공연해 좋은 콤비를 이루었었다.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갈 무렵의 봄. 매일이 똑 같은 매일인 이니쉐린의 한 작은 마을. 이 평화로운 마을에 가끔 본토의 총성이 들린다. 독서를 즐기는 총명한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과 단 둘이 사는 파드렉(패럴)은 천하태평형의 착한 농부. 젖소를 돌보고 우유를 내다 마을 장터에서 파는 파드렉은 당나귀 제니를 집안에 들여다 놓고 돌볼 정도로 사랑한다. 나중에 이 당나귀가 큰 변을 당하면서 착한 파드렉이 가공할 폭력 행위를 저지른다. 파드렉의 일과 중 하나가 오후 2시경에 오랜 절친한 친구 콤(글리슨)과 함께 동네 펍(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
그래서 오늘도 파드렉은 콤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데 집 안에 있는 콤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파드렉보다 나이가 많은 콤은 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 파드렉이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콤 앞에 앉아 도대체 왜 갑자기 자기를 피하느냐고 묻자 콤이 “난 이제 더 이상 너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퉁명하게 대답한 뒤 술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자기는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음악을 작곡하면서 여생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으니 더 이상 파드렉과 별 볼일 없는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뒤 늦은 자아각성의 선언이다.
그러나 갑자기 친구를 잃고 고독에 시달리게 된 파드렉은 콤의 이런 선언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 그러지 말고 예전처럼 다정하게 지내자고 끈질기게 졸라댄다. 그러나 콤의 반응은 여전히 “노.” 둘 다 고집불통인 파드렉과 콤의 이런 신경전은 해결책이 전무한데 파드렉이 계속해 귀찮게 굴자 콤은 파드렉에게 “네가 자꾸 이러면 내가 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폭력행위가 확대되면서 가공할 지경에 이른다.
영화는 파드렉과 콤의 얘기이지만 이 영화에서 우수한 것은 이들 주위의 사람들이다. 특히 약간 모자라는 것 같은 오빠 파드렉을 정성껏 돌보고 조언하는 여동생 시오반 역의 콘돈의 빼어난 연기와 마을 멍청이이나 실은 현명한 도미닉 역의 배리 키간의 연기가 아주 좋다. 도미닉은 파드렉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마을의 마녀 같은 노파(쉴라 플리턴)가 불길한 예언을 하는데 제목의 ‘반쉬’를 연상케 한다.
패럴의 미간을 찌푸리면서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연기와 덩치가 큰 글리슨의 무뚝뚝한 표정의 연기가 훌륭한 대조를 이루면서 얘기를 실팍하게 이끌고 나간다. 아일랜드의 한 섬에서 찍은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볼만하고 음악도 좋다. 우정과 고립, 고독과 자아추구에 관한 매우 훌륭한 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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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