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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 개스 가격이 민주주의를 해칠까?

2022-11-02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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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당이 집권당인지와 개스 가격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개스비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이게 실없는 질문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올해 개스비와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강력한 상호관계를 보였다.

올해 초, 개스가 갤런당 평균 5달러를 찍자 지지 여론이 공화당 쪽으로 쏠리면서 야당의 11월 중간선거 압승을 예상케 했다. 하지만 9월 중순, 개스비가 1달러50센트가량 떨어지자 여론의 풍향이 바뀌었고, 민주당의 경쟁력이 되살아났다.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세는 지난 9월과 10월초의 개스비 상승과 일치한다.

아마도 이런 상관관계는 허구일 수 있다. 당파색이 강한 연방대법원이 로우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등 비슷한 기간에 여론에 영향을 줄만한 다른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연구해온 정치학자들은 개스비가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다. 수십 년간 잠잠하던 물가 급등세에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의 높직한 가격판에 큰 글자로 고시된 개스비는 유권자들에게 지금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끊임없이 일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치인들이 개스비를 자주 입에 올린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근원 개인소비지출 디플레이터에 관한 설명을 건너뛴 채 트럼프 집권시절 미국의 평균 개스비가 “갤런당 단 2달러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한동안 지속되다 잠시 주춤했던 물가 하락세가 재개됐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휘발유 가격에 관한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짚어볼 최적의 시기일 터이다.

첫째, 휘발유 가격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제 시장에 공급되는 원유 가격인데, 미국은 여기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물론 유럽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개스비가 거의 완벽한 짝을 이루며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원유가격과 개스비가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 마지막 해에 이례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그가 어떤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코비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성장을 멈추면서 원유수요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원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원유수출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상당량의 러시아산 오일이 세계시장에 계속 공급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오일 가격은 다시 떨어졌다.

둘째, 소폭의 가격변동은 늘 정유시설의 기술적 문제에 의해 발생한다. 정유사는 원유에서 휘발유를 비롯한 파생상품을 뽑아내는 역할을 한다. 개스 가격의 단기 급등은 9월에 시작됐다. 지금은 이미 끝난 듯 보이는 단기급등은 많은 국내 정유시설들이 정비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데다 오하이오의 정유시설에 화재가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책과는 무관하다.

에너지 기업들이 가격과 이윤을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생산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그같은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 일부 독자들은 2000년과 2001년에 있었던 캘리포니아 전력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위기를 조장하는데 에너지 사들의 시장 조작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필자와 몇몇 분석가들의 지적은 곧바로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시 시장조작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증거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정유시설들에 발생한 문제가 최근의 가격인상으로 연결되었다는 주장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정도만 말하고자 한다. 의심을 풀지 않고 지켜보면서 에너지 사들이 엔론처럼 행동하지 않도록 경고를 하는 것은 틀린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장조작 여부가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개스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다.

개솔린 가격과 근로자의 평균 시급 사이의 비율을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이 비율은 2010년초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개솔린 가격은 트럼프가 아니라 오바마 시절에 급락했다. 그러나 당시의 유가하락은 세계 시장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프래킹에 의한 미국의 원유생산량이 급증한 것을 반영한다. 유감스럽게도 프래킹 붐은 3,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날린 채 거품처럼 터져버렸다.

따라서 아마도 개스비는 2010년 말의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원유생산에 적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프래킹의 수익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면, 앞서 필자가 말했듯, 현 시점의 개스비는 실제로 비싼게 아니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문제가 발생했던 정유시설 가운데 일부가 가동을 재개함에 따라 개스 가격은 앞으로 몇 주 사이에 걸쳐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자, 그렇다면 개스비와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성공, 혹은 실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거의 없다. 엄청난 이익을 올린 정유사들을 정 조준한 바이든의 압박이라든지, 전략비축유 추가 방출과 같은 조치가 유가를 낮추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개스 생산과 관련한 국내 정유시설의 기술적 문제는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결코 적절치 않다. 게다가 지금의 개스비는 10년 전에 비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개스 가격은 중요한 선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건 단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라 끔찍한 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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