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서티섬싱’으로 에미상 수상한 작가 조셉 도어티
‘서티섬싱’으로 에미상 수상한 작가 조셉 도어티
1987년부터 1991년까지 ABC-TV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서티섬싱’(thirtysomething)의 각본으로 에미상을 받은 조셉 도어티를 영상 인터뷰했다.‘서티섬싱’ 외에도‘프리티 리틀 라이어즈’와‘저징 에이미’등 우수한 여러 TV 드라마의 각본을 쓴 도어티는 각본가일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감독이요 제작자이기도 하다. 도어티는 연극 각본가 출신으로 그가 최근에 각본을 쓴 연극‘체스터 베일리’가 현재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다. 도어티가 TV 각본을 쓰는 방법과 자신의 30여 년 간의 각본가로서의 생애에 관해 집필한‘어 스크린라이터즈 컴패년’(A Screenwriter’s Companion)이 최근에 나왔다. 자택 집필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도어티는 질문에 큰 미소를 지으면서 밝고 활기차게 대답했다.
드라마 시리즈‘서티섬싱’의 한 장면.
-처음으로 TV 드라마의 각본을 쓰기 위해 다른 각본가들과 함께 작품에 관해 토론하면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원래 글을 쓴다는 것은 생태적으로 고독한 작업이다. 난 연극의 각본을 쓰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생애를 시작해 TV 드라마의 작가들과 함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매우 생소했다. 참가한 사람들 모두가 각기 자신의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들을 모두 탐구해보겠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듣고 그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나의 드라마를 구성할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반 시간짜리 TV 드라마의 각본을 쓰는 것과 연극의 각본을 쓰는 것은 아주 다르다. 그래서 연극 경험밖에 없던 나는 처음에 입을 다물고 다른 작가들의 말을 경청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들려줄 얘기들이 있는데 막상 그 것을 글로 쓰려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이미 작가로서 성공한 남의 얘기를 마치 자기가 듣고 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그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작가는 자기만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TV 드라마 작가는 공동작업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때로는 자기가 작가라는 것을 잊어야 하기도 하지만 결코 비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티섬싱’의 각본을 쓴 30년 전과 요즘 TV 드라마들의 각본은 서로 크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서티섬싱’은 사람들에게 작은 얘기일지라도 매우 큰 드라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 것은 요즘 드라마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TV 드라마의 인물들이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드라마를 사실처럼 느끼지 못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드라마는 30년 전 것이나 요즘 것이나 다 이런 공통점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그런 드라마들은 세대를 초월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것이 독특한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경험을 자기 경험으로 느끼면 그 것에 빨려들게 마련이다. TV 드라마가 영화와 다른 점은 드라마는 당신 방에서 일어나는 당신과 매우 근접한 얘기라는 것이다. TV 드라마의 기능 중 하나는 드라마의 얘기가 당신의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어떤 분위기 안에서 쓰는가.
“작가는 누구나 다 자기 집뿐만 아니라 집 밖의 다른 곳에서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난 잡동사니로 엉망진창이 된 내 집의 집필실에서도 글을 쓰지만 동네의 커피 집에서도 글을 많이 썼다. 특히 ‘서티섬싱’은 거의 대부분 지금은 없어진 커피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에 3-4시간 씩 각본을 썼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해도 괘념치 않았다. 스티븐 킹도 말 했듯이 작가는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집에서 쓰는 것도 무방하지만 집에서 글쓰기가 잘 안되면 밖으로 나가 쓰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전화는 끄고.”
-당신의 여러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여자들로 어떻게 그렇게 여자들의 심리를 잘 포착할 수 있는지.
“나는 여자들의 심리를 가능한 한 잘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여자들을 보다 쉽게 묘사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보다 광범위한 감정의 영역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한 내 경험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내게 넉넉한 화폭을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이끌린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남자들을 너무 소홀히 다뤘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 전 두 남자가 주인공인 2인 연극을 썼는데 이 것이 오는 10월 중순께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예정이어서 기분이 좋다. 다시 연극의 각본을 쓴 사람으로 뉴욕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아주 기쁘다. 그런데 작가는 그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쓸 수 있어야한다. 남자도 여자에 대해 쓸 수 있고 여자도 남자에 대해 쓸 수 있으며 또 이성애자도 동성애자에 대해 쓸 수 있어야한다. 다만 작가는 인물 묘사에 있어 진실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한다.”
-요즘 유색인종과 소수 계 등 다양한 인물들을 영화와 TV 작품에 고루 쓰라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당신은 이를 어떻게 작품에 소화시키는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충동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다가 문득 내가 나만의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거리에서 보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자문할 때가 있다. 요즘 우리는 다 이 문제로 인해 시달리다시피 하고 있는데 때론 드라마의 인물들 중 몇 %는 유색인종과 소수 계에 할당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하게끔 되었다. 그런데 나의 작품의 인물들은 그 누구나 다 맡아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이다. 어느 특정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 보편성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서티섬싱’의 속편격인 ‘식스티섬싱’을 쓸 생각은 없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그러나 요즘의 TV풍토는 과거의 그 것과 너무나 달라 나와 같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내가 지난 5년간 연극의 각본을 써온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더 퍼스트 실린더’라는 소설을 탈고해 내년 봄에 출간할 계획이다. 그 소설은 내가 고등학생 때 읽고 싶었던 얘기를 마침내 쓴 것이어서 난 지금 아주 행복하다.”
-작품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서 당신에게 찾아오는가.
“결코 완전한 개체로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길을 걷다가 문득 마음에 떠오르기도 하고 또 내가 경험한 일들 중에서 착상하기도 한다. 그런 후 이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을까 또는 무엇을 했을까하고 자문한다. 쓴다는 것의 대부분은 자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하나씩 유기체로 연결해 하나의 개체로 완성하곤 한다. 그러니까 그 것은 절차와 과정의 궁극적인 종합인 셈이다,”
-작가란 무엇이며 당신이 작가로서 지탱할 수 있는 것을 도와준 사람이라도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찾아가 거기서 살고파 하지만 작가란 그 환상의 세계에서 살기를 원치 않고 현실로 돌아와 여행자로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얘기하는 사람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작가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작가를 사랑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작가는 자신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하는 막중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그 것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신의 글에 대한 정열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조여들면 그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지금까지 작가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내 첫 번째 아내와 현 아내와의 오랜 관계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작가가 된다는 것도 힘들지만 작가와 관계를 가진다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다. 난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두 명의 반려자가 있어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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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