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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쿠와 엘가와 재클린

2022-10-19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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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쿠 카네 메이슨(23, Sheku Kanneh-Mason)은 현재 가장 ‘뜨거운’ 첼리스트다. 2016년 영국의 BBC 영뮤지션 콩쿠르에서 흑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음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2018년 해리 왕자와 메간 마클의 로열웨딩에서 축가를 연주한 이후 하루아침에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

그의 등장에 세상이 깜짝 놀란 이유는 클래식음악계에 흑인 연주자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악계에는 흑인가수가 더러 있지만 악기연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지휘자, 작곡가, 독주자, 심지어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도 흑인은 드물어서 LA 필하모닉만 해도 100명 넘는 단원 중 서너명도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셰쿠의 연주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이렇듯 희귀한 흑인 클래시컬 뮤지션이어서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깜짝 놀라게 기가 막힌 연주 때문이다. 17세 때 BBC 콩쿠르에서 우승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을 들어보면 그 나이에 말도 안 되는 기량과 성숙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적절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18세의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보여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연주와 맞먹는 경이와 감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셰쿠를 지난 12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무대에서 만났다. 영국의 시티 오브 버밍햄 심포니(CBSO)와 함께 미국 투어를 온 것이다. CBSO는 LA필하모닉이 키운 여성지휘자 미르가 그라치니테 틸라(Mirga Grazinyte-Tyla)가 음악감독인 영국 굴지의 교향악단으로, 10월 한달 동안 미 서부지역에서 산타바바라를 시작으로 OC의 시거스트롬 아츠 센터, LA의 디즈니 콘서트홀, UC데이비스의 몬다비 센터, 샌프란시스코의 데이비스 홀을 차례로 북상한 후 동부로 날아가 미시건과 메릴랜드, 뉴욕 카네기홀에서 22일까지 순회연주를 하고 있다.


CBSO의 이번 투어에서 셰쿠의 첼로 협연곡은 하이든과 엘가의 것 중 하나다. 그런데 OC에서는 엘가를, 디즈니홀에서는 하이든의 첼로콘체르토를 연주했으니, 그것이 개인적으론 큰 실망이었다. 셰쿠가 연주하는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실연으로 듣고 싶은 열망이 컸다.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자동적으로 재클린 뒤프레(Jacqueline du Pre)라는 불멸의 첼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42세에 요절한 뒤프레는 20세이던 1962년, 영국 BBC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 첼로협주곡을 연주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이 곡이 그녀를 대표하는 전설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잊혀진 작품에 대한 세기의 발굴로는 멘델스존이 찾아낸 바흐의 ‘마태수난곡’,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마리아 칼라스의 ‘노르마’와 ‘루치아’와 ‘메데아’를 꼽을 수 있는데, 재클린 뒤프레는 엘가와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을 세상에 내놓아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재클린의 연주는 항상 힘이 넘치고 강렬했다.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면 자기가 안고 있는 첼로를 잡아먹을 듯이 맹렬하게 활을 긋는 모습이 열정적이고 야성적이다. 현이 끊어질 듯한 신들린 연주로 그녀의 공연무대는 늘 숨 막히는 긴장감이 넘쳤는데, 실제로 연주도중 현이 끊어져 이를 교체하느라 10분간 쉬었던 해프닝도 있었다.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의 현은 거의 끊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네 살 때 라디오에서 첼로 소리를 듣고 엄마를 졸라 첼로를 시작한 재클린은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 등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쌓았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라고 칭찬했던 재클린은 1960년대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음악의 뮤즈로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했다.

당시 파릇파릇했던 이차크 펄만, 주빈 메타, 핀커스 주커만 등과 교류하며 활발히 연주활동을 펼치던 그는 1966년 12월 미국 데뷔무대에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젊은 천재는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최고의 음악적 교감을 이룬 두 사람은 세계의 연주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화려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1년 갑자기 전신의 통증과 이상을 호소한 재클린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28세 되던 1973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엘가의 협주곡 연주를 끝으로 활동을 접었다. 1975년에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1987년 42세로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녀가 투병하는 동안 남편 바렌보임이 거의 돌보지 않았고,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외도하여 두 아이를 낳았으며, 그녀가 죽자마자 재혼했다는 사실이다. 바렌보임은 이후 음악계에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재클린 뒤프레라는 이름과 병든 아내를 버렸다는 비난으로부터 지금껏 자유롭지 못하다.

셰쿠는 6세 때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처음 듣고 사랑에 빠져 첼로를 시작했다고 한다. 재클린 뒤프레의 음반을 끝없이 들으면서 따라하려고 애썼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자신이 되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 있다.

하필 오늘이 재클린 뒤프레의 기일(1987년 10월19일)이다. 지하에서나마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기뻐하면 좋겠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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