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념과도 같은 간절하고 애절한 그리움과 동경그린 로맨스

2022-10-14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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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 (5개 만점)

▶ 형사와 용의자로 만난 두 고독한 남녀 서로간에 동경과 유혹의 긴장감 넘쳐

집념과도 같은 간절하고 애절한 그리움과 동경그린 로맨스

형사 해일은 사건의 용의자 서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여인에게 매료된다.

박찬욱 감독이 올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살인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로맨스의 영화로 이 두 가지 성분을 주제로 지닌 필름느와르인데 예술성과 오락성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박 감독 특유의 폭력과 또한 유머가 간간이 섞여 들어간 멜로드라마다. 사실 이 영화는 형사 범죄 영화라기보다 로맨스 영화라고 불러야 좋지만 이 로맨스를 압도하는 것이 집념과도 같은 간절하고 애절한 그리움과 동경이다.

형사와 용의자로 만난 두 고독한 남녀 간에 내연하는 동경과 유혹이 주고 당기는 줄다리기에서 긴장감이 몸부림을 치는데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런데 박 감독은 영화를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아름답게 만들려고 시도해 전체적 분위기가 조작된 느낌이 들고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마치 감정을 과식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자의식적인 과다한 감정의 주입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박 감독은 히치콕의 팬으로 이 영화도 히치콕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데 히치콕 영화 중에서도 특히 제임스 스튜어트가 전직 형사로 나오고 킴 노백이 스튜어트가 미행하는 신비한 여인으로 나온 ‘환상’(Vertigo)을 많이 닮았다. 박 감독은 그의 첫 미국영화 ‘스토커’(Stoker)에서도 히치콕의 ‘사이코’의 한 장면을 모방해 히치콕을 기렸다.


단정한 차림의 민완형사 해준(박해일)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한 등산객의 바위산 추락사를 수사하면서 사망한 남자의 젊은 아내 서래(탕 웨이)를 만나게 된다. 서래는 중국에서 건너온 여자로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편 덕에 한국시민권을 땄지만 결혼은 억지 결혼식. 해준이 후배형사 수완(고경표)과 함께 사건이 살인사건인지 아니면 단순 사고인지를 수사하면서 서래를 소환해 심문하는 과정에서 서래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무감한 표정을 짓는 것을 발견, 서래를 남편의 살해 용의자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한국말이 서툰 서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여인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서래는 해준의 이 같은 감정적 접근을 은근히 수용하면서 그를 알듯 모를 듯이 유혹한다. 해준은 결혼했지만 아내 정안(이정현)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은 심야에 서래의 집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서래의 동태를 살피는데 해준이 서래를 심문하고 또 따로 만나는 과정에서 해준의 서래에 대한 감정은 거의 집념과도 같이 변모한다. 해준이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시선으로서만 동경하는 안타까움과 서래가 해준의 이 같은 그리움을 거의 표정 없이 수용하는 마음이 안으로 자아내는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이런 뜨거움은 결코 밖으로 분출되진 않는다.

일단 사건은 사고사로 종결되고 해준은 아침 안개가 자욱한 부산 이포로 직장을 옮긴다. 해준이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새 남편과 장에 나온 서래를 만난다. 그리고 또 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과연 서래는 첫 남편의 살인자이며 또 부산의 살인사건과도 어떤 연관이 있는가. 마지막 장면에서 격렬한 가슴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 박해일과 탕 웨이 간의 화학작용이 절묘하고 연기도 좋은데 특히 탕 웨이의 표정 없는 연기가 일품이다.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도 매우 훌륭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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