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락과 생존은 결코 비극도 기적도 아니다”

2022-10-14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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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1972년 비행기 추락으로 ‘안데스의 기적’ 속 생존자 구스타보 제르비노

“추락과 생존은 결코 비극도 기적도 아니다”

1972년 비행기 추락으로 ‘안데스의 기적’ 속 생존자 구스타보 제르비노

“추락과 생존은 결코 비극도 기적도 아니다”

추락한 비행기의 생존자들이 비행기의 잔해 안에서 쉬고 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 럭비 팀‘올드 크리스천스’의 선수들과 이들의 가족과 친구 등 총 45명을 태우고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나 칠레의 산티아고를 향해 비행하던 공군기가 악천후와 부조종사의 실수로 안데스 산 높이 3,570미터 지점에 추락했다. 추락하면서 12명이 사망하고 그 얼마 후 추위와 함께 부상이 악화해 여러 명이 또 사망했다. 이어 추락 후 72일 동안 다시 허기와 눈사태 등으로 13명이 사망, 최종 생존자는 총 16명에 불과했다. 이들 16명은 사망한 사람들의 인육을 먹고 생명을 유지했다. 추락 후 구조 비행기가 몇 차례에 걸쳐 수색을 펼쳤으나 흰 눈과 얼음 위에 떨어진 비행기의 동체가 백색이어서 찾지를 못하고 8일 만에 활동을 포기해야했다. 봄이 와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생존자중 2명이 10일간 안데스 산을 걸어 넘어 칠레에 도착해 구조를 요청, 1972년 12월 23일 추락 2개월 후 생존자 16명이 구조됐다. ‘안데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사고는 그 동안 책과 영화로 써지고 만들어졌는데 이산 호크가 주연한 1993년 작‘얼라이브’도 이 사고를 다룬 것이다. 이 사고를 다시 다룬 영화‘소사이어티 오브 스노’(Society of the Snow)가 네트플릭스에 의해 얼마 전 제작을 끝내고 내년에 상영될 예정이다. 감독은 스페인 태생의 J.A. 바이오나로 출연진은 대부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신인 배우들이다. 영화 제목은 생존자들을 일컫는 말로 영화는 파블로 비에르시가 쓴 저서‘더 스노 소사이어티’를 원작으로 만들었는데 비에르시는 여러 생존자들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사이였다.

당시 럭비 선수로 생존자 중 한 명인 구스타보 제르비노(69)를 영상 인터뷰 했다. 제르비노는 우루과이 굴지의 약품연구실험소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을 다루는 방법과 지도력 및 동기에 관한 순회 강연을 하고 있다. 몬테비데오에서 인터뷰에 응한 제르비노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당신은 아직도 그 추락에 대해 꿈을 꾸면서 깨어나 자신이 안데스 산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지.


“나는 절대로 그 추락에 대한 꿈을 꾸지 않는다. 그 추락은 내가 과거에 본 영화와 같을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행복하다. 그 추락은 내게 심적으로 아무 문제도 안 된다. 누군가 내게 그 추락에 대해 묻기 전에는 난 전연 그 것에 대해 기억하질 않고 있다.”

-당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워 남들과 나누고 싶은 교훈은 무엇인가.

“그 추락과 생존은 결코 비극도 또 기적도 아니다. 그 것은 사랑과 단합과 우정과 지형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의 선을 위해 공동사회를 이루어야 했는데 그런 사회를 위해 만든 규칙들은 정해지는 것만큼이나 쉽게 사라지곤 했다. 우리의 첫 번째 규칙은 절대로 불평하지 말라는 것으로 그 누구도 불평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생존으로 럭비 팀으로서 모두 함께 생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 사고로 당신에게 변한 점이라도 있는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생존자들도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나 다른 사람들은 다 사고 전이나 후나 같은 사람들로 변한 점이 없다고 본다. 내가 다른 생존자들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잠재능력의 질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그 사고로 인해 사람이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고로 우리가 모두 배운 중요한 교훈은 삶이란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해 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추락 후 부상당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줬는가.

“우리는 다 결코 준비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워야 했다. 난 당시 의대 1학년 생으로 3개월 정도의 수업만 받았었다. 심리학과 통계학과 생물학 등만 배웠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난 의사 노릇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난 최고의 의사였다. 박식한 의사가 되어 골절상을 치료하고 찢어진 곳을 봉합해야 했다. 이런 모든 것이 내 내면으로부터 저절로 나왔다. 그저 내 속에 있는 지식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산에서 추위에 떨며 살아남으리라고 생각했는지.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73일 밤낮을 살아남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생존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시행착오를 계속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죽음에 둘려 싸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존기술을 총 동원하는 것이었다. 배운 것이 있다면 공포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하겠다.”

-생존경쟁을 다룬 TV쇼 ‘서바이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그 쇼를 싫어한다. 생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내게 있어 그 것은 게임이 아니다.”

-당신들이 구조를 받은 칠레와 그 후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칠레를 통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칠레사람이다. 그 때 구조를 요청하러 산을 타고 넘은 2명이 칠레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린 다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칠레는 우리의 제2의 조국이다. 사고 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우리 럭비 팀은 사망한 우리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한 해는 우루과이에서 경기를 하고 그 다음 해는 칠레에서 경기를 번갈아가며 한다. 경기는 숨진 동료 선수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에 한다. 구조 3년 후 생존한 럭비 팀의 13명의 선수가 함께 안데스를 찾아 갔는데 난 그 후 12일 동안 말을 타고 안데스의 사고지점을 찾아갔었다.”

-왜 말을 차고 안데스를 타고 넘었는가.

“나는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가족과 생존자들과 함께 사고 지점을 열다섯 차례 찾아갔다. 지난 2월에도 갔었다. 나흘 밤을 야영을 하면서 50킬로미터를 걸어서 찾아갔다. 산은 아름다운 곳으로 나는 산을 사랑한다. 그 산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는 내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안데스를 찾아가는 것이다. 사고 지점에 도착하면 추락 시 떨어져 나간 비행기 날개 조각으로 제단을 만들어 타계한 사람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곤 한다.”

-‘얼라이브’ 같은 비행기 조난 사고를 다룬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인가.

“비행기 사고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긴 하는데 특히 우리 얘기를 다룬 ’얼라이브‘는 사실성과 함께 타계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주의 깊게 봤다. 본 결과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난 얼마 전에 바이오나가 찍은 영화의 10분 정도를 봤는데 영상과 대사가 모두 매우 강렬했다. 너무도 사실에 충실해 보고 있자니 마치 화산이 폭발해 뜨거운 용암이 분출되는 것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강력한 충격을 받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었다. 매우 훌륭한 영화가 될 것으로 믿는데 특히 이 영화는 스페인 태생으로 라티노인 바이오나가 만들어 강렬함이 앵글로-색손 감독이 만드는 것보다 더욱 치열하다고 생각한다. 라티노와 앵글로-색손은 서로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오나의 영화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바이오나는 지난 15년간 우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가급적 작은 사실에 까지도 충실하기 위해 때론 새벽 3시에도 전화를 걸어왔다. 특히 그는 산에서 숨진 사람들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애를 썼는데 자기 영화에서는 과거 다른 영화들과 달리 사망한 사람들의 실명을 쓰고 있다. 과거 영화들은 사망한 사람들의 실명을 쓰면 그들의 어머니들이 다시 한 번 자기 아들들의 죽음을 경험할 것이 두려워 가명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사망한 럭비 선수의 어머니들 중 생존 한 사람이 단 한 명뿐이어서 실명을 쓰기로 한 것 같다.”

-살아남은 것에 대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가.

“사고 전에는 하나님하면 지옥 불을 얘기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했으나 내가 산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와는 전연 다른 하나님이었다. 그는 우리를 돕고 또 우리에게 살아남을 힘을 주신 하나님이다. 난 매우 행복한 사람으로 매일 살아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한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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