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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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 사진보다 사람 먼저

2022-10-0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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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기사를 쓰는 기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 때로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가 참 멋지네 할 때가 있다. 기사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진은 철컥 하고 셔터를 누르면 바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사진이라고 다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지만.

예를들면 조선에는 1880년대초 지운영, 김용원 등 조선인 사진사들이 있었지만 갑신정변을 계기로 사진관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러자 자기 입맛대로 조선인들을 찍은 것은 일본인 사진사였다.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사진을 현실 정치에 이용했다. 일본인 사진사에게 고종이나 순종의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의 각도와 주위 건물들을 교묘하게 비치하여 나약하고 무력한 식민지 군주로 보이게 하라고 주문했다.


그뿐 아니라 1890년대부터 1930년대 관광기념상품으로 만들었던 사진엽서들은 하나같이 조선인들의 궁핍함을 드러냈다. 물동이 인 여인, 칼 쓰고 쪼그리고 앉은 죄수, 높은 짐을 진 지게꾼,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생 등등, 또 고층건물과 넓은 도로, 철도의 모습을 엽서에 등장시켜 자신들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제국주의를 포장했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일본인과 유럽사람들은 이 사진엽서를 보면서 미개한 나라 조선을 상상했다, 사진은 이렇게 왜곡되거나 조작될 수도 있다. 사진은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만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

며칠 전, 1990년대 초 신문사에서 5년이상 함께 일하다가 미주리주 언론대학원 포토저널리즘과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배가 자신의 사진집을 한 권 보내왔다. 2006~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1여년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은 ‘AFGHANISTAN’ 이었다.

현재 뉴욕타임스, 블럼버그, 월스트릿저널 등에서 프리랜서 포토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정은진(미국이름 Jean Chung)은 백인기자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세계 보도사진계에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낸 한국여성이다.

‘아프가니스탄’ 사진집에는 2001년 9.11사태이후 탈레반 퇴각 5년 후 주민들의 삶에 제한적 자유가 있던 시기가 담겨있다, 놀이동산에서 범퍼카를 타고 아이스크림 먹는 아이, 학교에서 수업하는 소녀들, 히잡 쓰고 청바지 입은 젊은 여성, 이발소에서 머리와 수염을 말끔히 손질하는 남성, 특히 숏팬티 차림으로 보디빌더 경연대회에 나온 단체 사진과 개싸움 현장에 몰린 구경꾼들 사진이 눈에 띄었다.

작년 8월15일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은 탈레반에 의해 재함락 되었다. 여학교 교문은 폐쇄되고 여성들은 다시 눈 부분에만 그물망이 있는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있다. 사진들은 비참하리만큼 가난한 일상을 다루고 있어도 특이한 각도 및 색, 빛 한줄기,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피사체 너머 상처와 아픔을 읽을 수 있는 사진들이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최근, 허리케인 이안이 플로리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호주의 한 방송국 카메라맨이 생방송 도중 카메라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이재민을 향해 물이 가득 찬 도로를 첨벙 첨벙 뛰어가는 영상을 보았다. 그는 무거운 짐을 함께 나르고 물살 센 구간을 지나는 주민들을 한참동안 도운 다음에야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고 한다.


케빈 카퍼라는 종군 기자의 ‘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이 있다. 독수리에게 먹히기 직전인 굶주린 아이를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히 남을 사진은 남겼지만 이후 쏟아진 비난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진 한 장은 남수단의 처참한 상황을 알렸고 이후 세계적인 구호활동이 펼쳐지게 만들었다.

과연 자신의 일에 최고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비록 허리케인의 생생한 사진 한 장은 놓쳤지만 수많은 사람을 도운 그랜 엘리스 카메라맨의 결단에 후한 점수를 주겠다. 어떤 위대한 작품보다 사람의 생명이 먼저라는 점에 손을 든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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