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2일간 한반도에서 일어난 동족상잔(相殘)의 비극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김일성의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작전계획에 따라 일으킨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었다. 북한군은 치밀한 계획 아래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기습 남침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해리 S.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딘,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하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전부입니다.” (Dean, 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and that’s all there is to it.)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미국은 25일 당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긴급 소집 요청하였다. 안보리는 북한의 무력공격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라고 선언하고 북한은 즉시 전투행위를 중지할 것과 그 군대를 38선 이북으로 철군시킬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 제 82호를 찬성 9, 기권 1(유고슬라비아), 불참1(소련)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엔의 요청은 북한에 의해 묵살되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6월 27일 유엔 안보리가 다시 개최되어 북한군의 즉각 철수 권고와 함께 유엔 회원국들에게 북한군의 군사 공격을 격퇴하고 대한민국 지원할 것을 결의하는 결의안 제 83호를 채택했다. 트루먼 대통령도 도쿄에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에 대한 군사 지원을 즉각 개시할 것을 명령했다.
마침내 안보리는 7월 7일 결의안 제 84호를 채택하여 미국의 지휘 하에 유엔통합사령부를 설치하고 유엔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한국전 참전을 독려했다. 그리하여 16개국이 전투 병력을 파견하고 의료 지원국이 7개국, 물자 지원국이 37개국 그리고 지원의사를 표명한 3개국 등 총 63개국이 유엔군이 되어 대한민국을 지원했다.
그 결과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은 반격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9월 15일에는 맥아더 유엔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월 1일 강원도 양양의 하조대 인근에서 국군 1군단 3사단 23연대 3대대에 의해 최초로 38선을 돌파했다.
이를 기념하여 1956년부터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뉴욕에서도 뉴욕예비역장교연합회(이동형, 이광남 공동회장)에서 이 날 기념식을 개최하여 루 칼다라 6.25참전 미해병용사에게 메달을 수여한 것은 뜻 깊은 일이다.
결국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아쉽게도 휴전이 되었지만 이러한 전 세계적인 유엔군의 참전과 지원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는 한국전쟁 관련 결의안 제 82호부터 제 84호까지 채택될 때, 소련이 안보리에 불참해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 대신 중공의 대표권을 주장하며 1950년 1월부터 항의의 뜻으로 안보리 출석을 거부하고 있었다.
만일 그 때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하여 이들 결의안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한국전쟁의 양상을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안보리 결의안들이 채택된 유엔본부가 있던 장소가 바로 현재 뉴욕 퀸즈의 플러싱 메도스 코로나 파크에 있는 퀸즈박물관이다.
둘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트루먼 대통령의 단호하고도 신속한 조치다. 트루먼의 이러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63개국의 군인과 의료진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모일 수 없었을 것이다.
트루먼의 결단으로 총 4만790명의 유엔군 전사자 가운데 3만6,940명의 미군이 전사했지만, 2,000만 명의 한국 국민은 생명을 건졌다. 한국 국민은 이들 전사자와 함께 트루먼의 결단을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의 징표로 파주시 임진각에 쓸쓸히 서있는 트루먼의 동상을 서울 용산으로 옮겨 ‘용산 해리 S. 트루먼 공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전쟁 없는 평화를 사랑하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용감히 전쟁에 나선다는 교훈을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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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