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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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슬기로운 취미생활

2022-10-06 (목)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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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로 오래는 못하지만 뭐든지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는 닥치는대로 배운다. 그러다보면 내게 맞는 취미와 특기를 찾아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면 그럴땐 애쓰지말고 잔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면 내 길이 다르게 있기도 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 특기가 된다. 다행히도 내가 잘하는 일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갖는 게 좋지만 대개의 어른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평생동안 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일도 직업이 되면 지루하고 지겹다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하며 열정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간다.

다행히도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걸 좋아하기에 교사로서 잘 지내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강제로 은퇴하니 이제는 무언가 심심하다. 얼마전에도 한국학교에서 연락이 왔지만 한번 더 무릎 수술을 해야 하고 예전처럼 온 정성으로 아이들과 지낼 수 없고 내가 즐겁지 않으면 배우는 이들은 더 지겨울 것이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그러면서도 내년엔 성당 건강학교에서 어른들을 위한 한자반을 만들어서 붓펜으로 사자성어를 넣어 글짓기를 할 계획을 세워본다.

모든 것을 구분하는 나의 기준은 단순하게 재미있다와 재미없다로 간단하게 나누고 복잡함보다는 단순하고 쉽고 짧은 것을 좋아한다. 그래선지 끈기와 인내심을 요하는 장편이나 긴 대하소설보다는 단편이나 수필이나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건 잘 할 수 있게 되어 적당히 짧은 수필이나 시를 위한 글쓰기는 아직까지 이어진다.
끈기가 없어선지 가정시간에 털실 목도리를 뜨는데 나는 매일같이 첫 줄 코만 만들고 그 다음을 못나가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몇 줄씩 아양과 공갈협박으로 겨우 만든 뱀처럼 꼬여진 목도리로 최하점수를 받았다. 한창 유행인 십자수를 놓으면 사과는 찌그러진 달걀이 되고, 탐스런 모란꽃은 벌레먹은 채송화로 바뀌었다.


그러다 재봉틀로 하는 홈패션을 시작하고 나는 재봉의 여왕이 되어서 뭐든지 척척 만들었고, 지금도 집들이 선물로는 쫄깃한 면으로 베개커버를 만들어주고, 가족들이 바지 길이 수선이나 누빔질거리를 가져오면 신나게 해준다.
또한 꾸준함이 필요한 음주가무와 관련된 노래 술 춤 운동은 아무리해도 불가능하다. 그대신에 음악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니 USB에 온갖 노래를 넣어줘서 귀찮토록 억지로 들을수 있고, 핫도그 먹고 카트 타는 재미로 치는 골프는 연습량과 상관없이 오랫만에 나가도 똑같은 실력으로 언제나 처음처럼 똑같이 잔소리를 흘려들으며 나만 즐겁고 태평스레 치고 함께 한 가족만 애가 탄다.

처음에는 물안경을 끼고도 무서워서 눈감고 수영을 했지만, 이제는 인어 할머니가 되어 얼굴에 물 한방울 안 튀기며 매일같이 펄떡이며 꾸준히 내 몸을 위해 보약 먹듯이 잘하고 있다. 이제껏 살아본 바에 의하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듯이, 내가 못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해준다는 이상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할머니는 처음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쁨 또한 크다. 경제적으로도 조금은 여유가 있어서 자신을 위한 투자를 때로는 아낌없이 해도 된다. 열심히 일한만큼 내가 즐거운 것이 노년의 특권이다.

아무쪼록 아이들 다 제 갈 길 다 보내면 그때부터라도 나를 위해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 다 털어주고 어두운 집에서 자식들 손길을 기다리지 말고, 내 돈으로 가고 싶은 곳 가고,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예약 없이는 보기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다짐한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무상클럽 회원인 나도 애틋한 손주들이 좋아하는 딸기와 최상급 고기를 먼저 집고 내가 좋아하는 단감이나 생선 앞에서 망설이는건 어쩔수없는 부모의 내리사랑이다. 그래도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보세라 하고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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