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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선무당’ 지도자들

2022-10-04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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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의해 시작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며칠이면 끝난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어긋나고 전쟁은 8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으로 전황이 역전되는 조짐을 보이자 전쟁을 일으켰던 푸틴은 30만 러시아인들에 대해 예비군 징집명령을 내리고 점령지역 합병을 선언하는 등 확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 전쟁이 앞으로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혀 영구집권이라는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정보국(KGB) 출신답게 푸틴은 구소련 붕괴 후 구체제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강고했던 체제가 급속하게 붕괴돼 버리면 구성원들은 해방감보다 혼란을 먼저 느끼게 된다. 그런 혼란에 따른 불안감은 무엇인가 강력한 힘과 존재에 기대고 싶어 하는 심리로 이어진다. 푸틴은 이런 불안감과 가부장적 지도자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갈구를 자신의 권력을 다지는 데 백분 활용했다. 그는 러시아 미디어들을 동원해 자신의 육체적 강인함을 수시로 과시하는 등 마치 ‘백마 탄 초인’이라도 되는 양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몇 년 전에는 크림반도 침공을 통해 러시아 국민들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자극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푸틴이 집착해온 이런 정치적 책략의 결정판이라고 보면 된다.


전쟁은 일단 시작되면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역사 속 무수한 전쟁들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2015년 연방의회에서 이슬람 국가들과의 전면전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 연방의원은 “전쟁을 시작하는 건 쉽지만 이것을 끝내는 건 어렵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라크전쟁 참전용사 출신이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들은 전쟁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손쉽게 꺼내들 수 있는 카드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국가지도자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전쟁’이라는 수사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한다. 전쟁의 한계와 참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지휘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베트남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드골 역시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자 즉시 철군명령을 내렸다.

정보국 출신인 푸틴은 군 경력이랄 것이 없다. 군 복무나 지휘 경험이 없는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군 참모부를 건너뛴 채 일선 사령관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2차 대전 말기 시시콜콜 군사적전에 간섭했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선무당이 위험한 칼을 휘두르는 형국이다.

툭하면 ‘선제타격’이니 ‘전쟁’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거나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국가지도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리적 힘에 대한 맹신이 그 한가지이다. 그리고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런 힘의 사용을 위한 도구가 돼 본적이 없다는 점이다. 군 지휘는 물론 복무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특히 한국의 경우 호전성을 드러내는 정치집단일수록 병역 기피와 면제 비율이 높다. 반대로 군 경험을 한 지도자들이 많을수록 평화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20세기를 전후해 연방의회 의원들 가운데 군 복무 경험자들이 많았을 때 미국이 더 평화로웠다는 실증조사도 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04년 보스턴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자신의 해군 복무 경험을 회상하면서 “진정한 지도자라면 자신의 군대를 위험 속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기피 의혹을 사고 있던 부시 당시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자국군인이 6,000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만에 이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 군 및 민간인 사상자와 재산피해, 그리고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가하고 있는 충격과 타격을 감안하면 푸틴이 일으킨 전쟁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개인적 욕망은 오기의 단계를 지나 점차 광기로 변하고 있다. 하루속히 이를 멈춰 세우지 못할 경우 마주하게 될 후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같은 광기가 어떤 형태의 단죄로 이어질게 될지 역사의 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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