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제동 걸리는 학자금 융자 탕감안

2022-10-04 (화)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30년간 오르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대학 등록금을 빼놓을 수 없다.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 인상율은 3배에 달하는데 공립 대학 등록금은 이미 연 5만 달러, 일부 사립대는 8만 달러가 넘는 곳도 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융자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없고 이중 상당수는 돈만 내고 졸업을 못하거나(입학생의 40%) 졸업을 해도 취직이 잘 안 되거나 취직이 되어도 수입이 적은 인문대 등을 나와 융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들이 지고 있는 총 부채는 1.7조 달러에 달해 이들은 심한 경제적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 정부는 이를 탕감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이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첫째, 융자금을 갚지 못해 허덕이는 사람 상당수가 흑인 등 소수계이기 때문에 인종적 경제 불평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둘째, 탕감 받은 사람들은 갚아야 할 돈을 물건 사는데 쓸 것이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며 셋째, 트럼프 같은 백만장자도 파산을 해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받는데 학자금 융자만 여기서 제외한다는 것은 불공평하고 넷째, 융자자의 20%가 이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상태며 다섯째, 미국민의 62%가 찬성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이에 대해 반대자들은 첫째,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평생 100만 달러 이상 버는데 이들만 돕는 것은 불공평하고 둘째, 수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로 인한 예산 적자는 결국 고졸자를 비롯한 다른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데 이 또한 부당하며 셋째, 이렇게 탕감을 해주면 대학이나 학생들은 이를 기대하고 등록금을 더 올리고 더 융자를 받을 것이고 넷째, 이는 이미 성실하게 빚을 갚았거나 지지 않은 학생에게 불공평하며 다섯째,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융자금을 탕감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 올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는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해 지난 8월 일반은 1만 달러, 펠 그랜트 수혜자는 2만 달러까지 학자금 융자를 탕감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최대 4,300만 명이 혜택을 입고 2,000만명은 융자금이 전액 면제될 것이지만 5,000억 달러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순풍에 돛단 것 같던 융자금 탕감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인디애나의 한 융자자가 바이든 탕감안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된다며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한 ‘태평양 법률 재단’ 소속 변호사인 프랭크 개리슨은 ‘공공 서비스 융자금 탕감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다. 이 프로그램은 10년간 일정액을 갚으면 나머지는 탕감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개리슨은 바이든이 2만 달러를 탕감해 주더라도 매달 일정액은 내야 한다.

거기다 인디애나는 연방 정부 탕감액은 소득으로 인정해 주세를 물리기 때문에 원래 내지 않아도 될 1,000 달러의 주 소득세를 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탕감안에는 수혜자가 이를 거부할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개리슨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것이 확실시 되고 따라서 소송할 자격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그의 소송 자격을 인정할 경우 항소해 연방 대법원까지 가기만 하면 그가 승소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바이든의 탕감안은 폐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의 탕감안 발표는 2003년 제정된 ‘학생 영웅을 위한 고등 교육 구조 기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은 2003년 이라크 전에 참전한 참전 용사를 돕기 위한 것으로 “전쟁이나 기타 군사 작전, 국가 비상 사태시” 학생 지원 프로그램 규정을 수정하거나 면제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주고 있다. 바이든은 코로나 상황이 국가 비상 사태기 때문에 자신에게 학자금 융자를 탕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논리는 궁색해 보인다. 바이든 본인도 최근 코로나 사태는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개리슨이 살고 있는 인디애나 등 6개주도 바이든 탕감안이 자기 주 학자금 융자 서비스 단체의 이익을 해치고 참전 용사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학생 영웅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시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학생 융자금을 정부가 탕감해 주느냐 마느냐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이는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이를 20년 전에 만들어진 이라크 참전 용사 지원법에 근거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