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달 전이다. 뉴욕에 사는 둘째 아들 녀석을 방문했을 때다. 삼십대에 들어선 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센트럴파크에서의 야외 공연과 코미디클럽에 가 보기로 했다.
야외 공연은 내 아이디어였고 코미디는 둘째의 제안이었다. 나에게 센트럴파크 공연은 처음이었고 코미디클럽도 아주 오래 전 첫째 애가 대학생이었을 때 딱 한 번 뿐이었다. 야외 공연은 내가 표를 예매했고 코미디클럽은 둘째가 예약했다.
코미디클럽 가까이에 왔을 때 입장하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 상당히 긴 것을 보고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미리 예약한 사람들의 줄은 따로 있었고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너댓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입장이 시작되자 예약자들이 먼저 들어 갈 수 있었는데 안내자가 자리 배정을 하는 듯 우리가 원하는 자리를 물었다. 첫줄에 앉겠느냐? 내가 잠깐 대답을 생각하는 사이에 둘째 애가 그러겠다고 했다. 어, 맨 앞줄이 과연 괜찮을까? 과거에 큰 애 하고 왔을 때는 뒷쪽에 앉아 여유있게 즐겼는데. 할 수 없지.
안내된 자리는 맨 앞줄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정중앙 이었다. 스테이지와의 사이는 불과 몇 피트 뿐. 그러니까 등장하는 코미디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게 된 것이었다. 걱정이 확 다가왔다.
코미디언들이 관객들에게 농담을 걸어오기도 하는데. 희생제물 최우선 순위이겠구나. 이걸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우선 한 사람이 메뉴에서 둘 씩 주문해야 되니 주문부터 하자. 배도 고팠다. 둘 중 하나는 먹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는 음료수로 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자 먹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스테이지에 올라온 코미디언은 관객을 쭉 훑어보면서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미국 내 여러 곳에서 온 듯했다. 그러다가 나 한테도 차례가 왔다. 아마 한국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지.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곳이 인종차별 하는 버지니아 지역이냐고 묻는다. 허!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다.
코미디언의 농담을 웃고 들으면서 나는 시켜 놓은 음식을 계속 먹었다. 그런데 앞줄에 앉아 음식 먹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음료수만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한 코미디언이 나에게 음식이 맛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아뿔사. 내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먹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코미디를 즐겨야 하는데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맛 있다. 배도 고프다.” 라고 대답했다. 관객들의 웃음이 뒤따랐다. 그리고 나선 계속 먹기가 어려워졌다. 젠장, 더 먹어야 하는데. 참자.
그렇게 몇 명의 코미디언이 등장하더니 한 명이 이번엔 나에게 내 옆에 앉아 있는 둘째 애와 무슨 사이냐고 묻는 게 아닌가. 아들이냐 아니면 말 못 할 사이냐? 아니 이건 또 무슨 질문. 동성애 관계냐라고 묻는 의미였다. 어떻게 대답하지 생각하다 나온 대답이 “둘째 boy이다.” 였다.
그랬더니 자기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안 했다면서 이번에는 둘째에게 물어 본다. 둘째는 아예 그냥 웃기만 했다. “이 친구도 대답 안 하네.” 라는 코미디언의 코멘트에 관객들 모두 다시 한 번 웃음 한바다. 앞줄에 앉은 게 잘못이지.
그렇게 코미디는 계속 진행 되었다. 그러다가 한 두 명 후에 또 다른 코미디언이 올라왔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뭐지? 우리 둘 사이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지. 또 대답을 해야 했다. 모두들 숨 죽이고 내가 어떻게 대답하나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 둘째……. 아들.” 박수가 터졌다. 코미디언은 어리둥절해하는 듯했다. 박수가 한참 계속되자 나는 일어나 오른손을 들어 흔들고 좌우와 뒤로 목례를 했다.
끝나고 나가는데 어느 여자 손님 한 명과 딸인 듯한 아가씨가 그 날 나 때문에 더욱 즐거웠다고 했다. 이럴 땐 또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예, 코미디클럽이 다 그런거죠, 뭐.” 나중에 들어 보니 둘째 애는 어디에 머리를 파 묻고 싶었단다. 그 날의 코미디클럽 방문은 코미디였다.
<
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