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에 즉위 후 70년간 재위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최근 서거함에 따라 찰스 3세 왕세자(73세)가 아주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다음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그와 다이애나 빈 사이에 태어난 장남 윌리엄(40세) 왕세자이고, 2위는 윌리엄의 장남 조지 왕세손(9세)이 된다. 이 기회에 선출직인 미국 대통령의 승계 내력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미국 역사상 임기 중 서거한 첫 번째 대통령은 군인 출신 9대 ‘윌리엄 해리슨’(68세)이다. 그는 춥고 비 내리는 3월의 늦겨울 날씨에 거행된 자신의 취임식에서, 제발 코트를 입으라는 참모들의 애원을 묵살하고 강골의 장군 기상을 보여주기 위해 8,445 단어로 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취임사를 장장 1시간40분에 걸쳐 낭독하다 그만 급성 폐렴에 걸려 취임 한 달만에 사망한다.
“대통령이 해임되거나 사망, 사임 또는 해당 직위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부통령에게 동일한 권한이 부여된다”라고 된 헌법 2조에 따라 부통령이던 ‘존 타일러’(1841~1845)가 자동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승계 직후 글자 토씨 하나를 두고 엄격하게 따지는 법조문 성격상 ‘동일한’이란 문구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만약 부통령이, 죽은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만을 동일하게 이어받아야 한다고 해석하면 타일러는 4년간 부통령으로 남아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를 대행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직무 그 자체를 동일하게 이어받는다고 해석하면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일러는 내각 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제부터 대통령이므로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부통령 앞으로 온 서류는 뜯어보지도 않겠다고 국무회의 석상에서 단호하게 공언함으로써 선거를 다시 치르지 않고 부통령이 대통령을 승계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링컨(16대), 루스벨트(32대) 등 재임 중 총 7명의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표면상으론 부통령들에게 평화적으로 승계가 이뤄졌다. 그러나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부통령직이 공석이 된다거나 대통령이 건강상의 문제로 직무수행이 힘들 때 누가 대행을 해야 하는지 등은 여전히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이 문제가 1963년, 재임 중 8번째 사망자 케네디 대통령(35대) 암살 때 불거진다. 왜냐하면 부통령인 ‘린든 존슨’은 심장마비 병력이 있었고, 승계 다음 순위인 하원의장은 71세, 상원의장은 86세 고령으로 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5년의 수정헌법 제25조는 이 같은 배경하에 탄생한다.
제1항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고 명시함으로써 백 년 넘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2항은 새로운 대통령이 부통령을 지명하고 의회가 다수결로 인준함으로써 부통령직의 공석 문제를 해결했다.
제3항은 대통령이 권한과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부통령이 대신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조항에 의거 부시 대통령은 2007년 수면내시경 검사 때 2시간 동안 ‘딕 체니’ 부통령에게 잠깐 대통령 권한을 위임하기도 했다.
마지막 제4항은 소위 말하는 ‘쿠데타’ 조항이다. 즉 부통령과 내각 위원들 대다수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의회에 공문을 송부함으로써 대통령의 직무를 부통령이 승계받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불복 연설을 통해 지지자들을 자극하면서 의사당이 시위대에 점령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이 조항을 내세워 임기 2주를 남겨둔 트럼프의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펜스 부통령의 거부로 무위에 그친 바 있다. 결국 제4항에 의한 승계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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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