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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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장벽을 넘고 넘어

2022-09-23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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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넘치게 많은 세상이다. 대량생산과 패스트 패션이 합쳐지면서 너무 많은 옷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버려진다. 그 많은 옷들 중에서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 입는 것이 오늘날의 의복문화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원하는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게 된 역사는 길지 않다. 신분에 따른 차등이 엄격했던 전통사회에서 옷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귀족이 입는 옷과 평민이 입는 옷, 하층민의 옷은 구분되었다. 옷의 장벽을 넘을 수 없었다.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되니 옷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남녀가 평등하지 않던 시절, 여성들은 ‘옷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미국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싹튼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1848년 뉴욕주 세네카 폴스에서 처음으로 여성권리 대회가 열린 후 여권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백인)여성들은 코르셋으로 숨도 못 쉬게 허리를 졸라매고, 길이가 바닥까지 치렁치렁한데다 층층이 뼈대를 넣어 치마폭을 넓게 만든 후프스커트를 입었다. 하녀가 시중을 들지 않으면 혼자 입기도 벗기도 힘들었다.

1세대 여권운동가인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는 여성이 해방되려면 옷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옷을 입고 있는 한 여성들은 의존적이고 약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옷의 감옥을 벗어던지라”고 촉구한 사람은 그의 아버지 게릿 스미스였다. 열성적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여권운동 지지자였던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스미스 밀러는 1851년 새로운 패션을 고안해냈다. 스커트를 무릎 길이로 자르고 대신 속에 바지를 입는 혁신적 스타일이었다. 블루머로 이름 붙여진 펑퍼짐한 바지를 여권 운동가들이 입기 시작하자 사회적 반향이 엄청났다. 여성과 바지는 물고기와 자전거만큼이나 상관없던 당시, 여성의 바지차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여성이 다리를 내어놓다니(바지를 입어도 다리는 드러난다는 것이다) 상스럽다”는 야유가 쏟아졌고, 목사들은 “여자가 남장을 하다니 마귀에 씌었다”고 비난했다.


바지는 여권운동의 가장 파격적인 상징이 되었고, 미국사회는 여성의 권리 주장에도 바지차림에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성이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바지를 입는 데는 근 한 세기가 걸렸다. 남녀평등이 자리를 잡으니 여성의 바지 입을 권리가 따라왔다.

21세기에 여성의 앞을 가로막는 또 다른 옷의 장벽이 있다. 그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이란 여성들이 맹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성들에게 강제된 히잡을 벗어던지고 불태우는 격한 시위가 일주일 째 확산되고 있다. 이란 전역에서 최소한 7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쳤다. 히잡 때문에 한 여성이 목숨을 잃자 여성들의 가슴 속에 억눌려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이란 북부 쿠르디스탄 주에 살던 마흐사 아미니라는 22세 여성은 지난 13일 가족과 함께 수도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도덕경찰에 체포되었다. 히잡 착용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그리고는 경찰조사를 받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가 사망했다. 경찰이 아미니의 머리를 마구 가격하는 등 과도한 폭력사용이 사인이라고 가족들은 주장하고, 경찰은 여성의 심장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진상조사 촉구로 시작된 시위는 여성들의 히잡 의무화 반대시위로 이어지고, 이슬람 율법을 근간으로 한 신정국가 압제정치에 항거하는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근래 보기 드문 격한 시위에 이란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이란은 한때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였다. 1925년 시작된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를 내세우며 여성의 히잡 착용 전통을 폐지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호메이니 정부가 들어서고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가 바뀌면서 9세 이상 모든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했다.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이란 방문 때 히잡을 썼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의 의상은 몸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햇빛과 바람을 피하기 위해 베일을 쓴 것이 유래라고 한다. 그후 가부장제가 강화하고 부족들 간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적 유린이 빈발하자 여성 보호차원에서 몸을 가리는 의상이 자리를 잡았다.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할까봐 머리와 어깨부분을 감싼 히잡, 얼굴과 손만 내놓고 몸 전체를 가린 차도르, 얼굴이 외간남자의 이목을 끌까봐 눈 부위만 잘라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니캅, 눈 부위마저 검은 망사로 가린 부르카 등이다. 남성이 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율법으로 가르치고 엄하게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문화이다. 그렇게 여성들은 옷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히잡은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

히잡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합적이다. 히잡을 고유전통으로 종교적 신념으로 지지하는 여성들도 많이 있다. 2010년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다민족 간 통합과 사회적 동화, 그리고 테러위험 방지 조치로 무슬림 여성들의 전통의상 착용을 금지하자 인권탄압이라며 히잡을 오히려 착용하는 경우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시민은 어떤 옷을 입을지 혹은 안 입을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기 결정권이다.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이란의 여성들이 어떤 성과를 이뤄낼지 지켜본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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