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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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어디서 살게 될까

2022-09-09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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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이 처음 출현한 곳은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가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 지구인들의 본향이다. 국제 공동연구진이 DNA정보 분석기술로 모계 조상을 추적해 밝혀낸 바에 의하면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혈통은 20만년 전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에서 출현했다. 칼라하리는 지금의 보츠와나 안에 있는 지역. 그곳에는 아직도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순수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통칭 부시맨, 산족이다. 보츠와나 그리고 나미비아 짐바브웨 등 인접 국가들에 산재해 살고 있는 산족은 인류 조상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민족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뜻한 남쪽지역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후 10여만 년에 걸쳐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나갔다. 인류는 5번의 대이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왜 조상대대로 살던 정든 지역을 떠났을까.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위의 연구진이 2019년 네이처 지에 발표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인근지역에 풍성한 녹지가 조성되면서 13만년 전 인류는 이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내에서 북동쪽으로, 이어 남서쪽으로 이동했고, 이후 10만년 전 시나이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일대, 9만년 전 남부 유럽과 인도 부근, 6만년 전 호주와 극동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1만4000년 전 5차 대이동 때는 남북아메리카로 진출했다. 빙하기였던 당시 아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잇는 베링해협이 꽁꽁 얼어붙어서 도보횡단이 가능했다.

지구의 마지막 빙기(glacial period)는 1만 여년 전 끝나고 지금은 빙기와 빙기 사이의 온화한 기간인 간빙기(interglacial period)이다. 간빙기가 시작된 1만 2000년 전부터 인류는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며 농경생활을 시작했고 영구 정착에 돌입했다.


인류가 또다시 대거 이동해야 할 때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원인은 기후변화이다. 극심한 폭염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으로 대륙은 절절 끓고 그로 인한 대형 산불이 끊이지 않고, 무자비한 태풍과 허리케인 그에 동반한 홍수로 농지와 주거지들은 물바다가 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언제 나라가 사라질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기후위기로 지구는 중병을 앓고 있다.

남가주에서는 화씨 100도가 훌쩍 넘는, 100년만의 폭염이 거의 한 달째다. 북가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 새크라멘토는 114도를 찍었다. 기록적 고온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속기간이다. 이상고온이 이렇게 오래 간 적은 없었다. 연일 너무 뜨거운 열기에 내몰리다보니 두통이나 탈진 등 몸에 이상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2022년 여름은 잔인하다.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이 살인적 열파로 고통 받고 있다면, 켄터키 미주리 등지는 홍수 피해가 엄청났다. 대형 산불이 이어지는 유럽에서는 가뭄으로 강바닥까지 물이 말라 2차 대전 때 침몰한 선박들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은 지난달의 물폭탄 급 집중호우 피해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태풍이 들이닥쳐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파키스탄에서는 대규모 홍수로 국토의 1/3이 물에 잠기면서 최소한 1,30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는 뒤이어 폭염이 닥쳤으니 해도 너무 했다.

이런 기상이변은 올해만의 기현상이 아니고 해마다 더 심하게 더 자주 발생할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를 들어 남가주 기온이 110도를 넘어 120도에 달하고, 지속기간이 한 달이 아니라 서너 달씩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해수면 상승과 홍수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해안지역과 섬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때가 오고 말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2050년 즈음으로 본다. 앞으로 30년 후면 지구상 많은 곳들은 살기에 너무 불편하거나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80년 후인 2100년이면 지구는 전혀 다른 행성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생존을 위한 길은 이주뿐. 앞으로 수십년 내 대대적 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안을 떠나 내륙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 대대적 이동은 시작될 전망이다. 기온 상승 속도와 인구증가 속도를 시뮬레이션한 연구를 보면 이주하지 않을 경우 지구촌 전체 인구의 1/3은 지금의 사하라 사막 기후조건에 방치된다. 한반도의 함경북도, 미국의 미시건이나 오리건, 북해 등지를 가로지르는 북위 42도 아래는 폭염과 가뭄, 산불이 극심해져서 더 이상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지구온난화가 행운인 지역들도 있다. 그린랜드, 시베리아를 비롯, 러시아 캐나다 북유럽 미국의 알래스카 등지는 동토들이 녹아 농토가 되고 혹한 대신 온화한 기후가 찾아들어 일대 부흥기를 맞고 있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하와이는 쇠퇴하고 대륙 중앙의 러스트벨트나 오대호 부근이 살기 좋은 곳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가 또 어떤 불평등을 몰고 올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부유층은 알래스카나 캐나다로 이주하고 남쪽에는 빈곤층만 남는 소득계층 간 격절이 초래될 수도 있다.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은 앞으로 어디서 살게 될까. 알래스카의 얼어붙은 허허벌판에 작은 땅 하나 사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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