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핑은 필요와 욕구를 채우는 행위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산다면 샤핑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혹은 돈 많은 걸 과시하느라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는 것이 샤핑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옷장 가득 옷이 있어도 새 옷을 사고, 가방의 용도만 생각하면 전혀 불필요한 수천 달러짜리 핸드백을 사고, 호화 자동차를 사는 이유이다.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뭔가를 사고 나면 한동안 행복감에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기분이 울적할 때 샤핑을 하고 나면 기분전환이 되는 효과도 있다. 샤핑이 주는 위안이자 만족감이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속설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호경기 때는 투자하는 법 같은 데 관심이 쏠리다가 불경기 조짐이 보이면 주머니 단속 요령과 함께 경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민간 지표들이 회자되곤 한다. 사람들의 심리가 비슷하고 경제는 많은 부분 사회구성원의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불황 예고 속설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립스틱 지표이다. 주머니 사정이 빡빡할 때, 샤핑은 하고 싶고 돈은 없으니 여성들이 립스틱을 많이 산다는 논리이다. 싼 브랜드는 10여 달러, 고급브랜드는 몇십 달러면 되는 립스틱 하나 사면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립스틱 중에서도 빨간 색 등 눈에 확 띠는 색이 인기라고 한다.
립스틱 지표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에스테 로더의 레너드 로더 회장이었다. 2001년 불경기가 깊어질 당시 로더 회장은 립스틱 매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월스트릿저널 보도에 의하면 립스틱 판매는 11% 상승했다.
비슷한 현상은 1929년~1939년 대공황 때도 일어났다. 미국이 경기침체로 향하던 2008년에도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들은 립스틱 등 메이컵 판매 증가현상을 목격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값싸게 누릴 수 있는 호사로 여성들이 립스틱 샤핑을 한다는 것, 립스틱 판매와 경기는 역으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립스틱 지표이다.
저렴하게 기분전환 하는 물건은 그때그때 바뀐다. 2008년 불경기 당시에는 매니큐어 매출이 치솟았다. 비싼 돈 들여 네일살롱에 가는 대신 직접 매니큐어를 하는 여성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써야했던 지난 2년은 립스틱 대신 향수가 인기를 끌었다. 2021년 1.4분기 향수 판매는 전년도 대비 45% 증가했다. 한편 올해 1.4분기 립스틱 판매는 전년 대비 48% 치솟았다. 좋은 조짐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남성용 의류도 불경기 지표로 꼽힌다. 미국경제가 대대적 침체기로 접어들던 2008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불경기의 전조로 한 상품을 꼽았다. 바로 남성 팬티였다. 경기가 나빠지면 남성들은 새 팬티가 필요해도 안 사고 버티는 경향이 있다고 앨런은 당시 한 기자에게 말했다. 팬티는 아무리 낡아도 남들에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여윳돈이 있으면 겉옷에 투자하지 속옷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황의 상징적 상품도 있다. 샴페인이다. 1999년 인터넷 버블 때, 2007년 주택시장 버블 때 그리고 가장 최근으로는 2021년 주가가 급등했을 때 미국에서는 샴페인 판매가 치솟았다. 잔치 분위기였다. 곧이어 버블이 터지자 샴페인 판매는 곤두박질 쳤다.
경기침체 징후가 짙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샤핑 가서 달랑 립스틱 하나 산다면, 남성들이 새 팬티를 사지 않는다면, 한동안 지갑을 닫고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