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폴 크루그먼 칼럼] 독재자와 무역흑자

2022-08-31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크게 작게
최근 나온 N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간주한다. 유권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반가우면서도 우려스러운 징조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반 침식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최근 서베이는 세계 전체 인구의 37%가 완전한 독재국가로 분류된 59개국에 거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 59개 정권 중에서 국제질서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할 만큼 강력한 독재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단 두 곳뿐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크게 다르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는 초강대국으로 경제력은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반면 러시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3류 국가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전) 이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러시아군의 전력은 대다수의 군사전문가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약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닌 한 가지 공통점은 양국 모두 엄청난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라는 점이다. 무역흑자는 이들이 지닌 힘의 신호일까? 독재주의가 제대로 작동 중이라는 증거인가?

아니, 두 나라 모두에게 흑자는 약함의 신호다. 트럼프는 수입보다 수출이 많아야 ‘승자’라고 강조하지만,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흑자 상황은 바로 그 같은 통념을 교정하는데 유용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러시아의 무역 흑자부터 살펴보자. 러시아가 기록한 흑자의 대부분은 서방측이 단행한 경제제재의 결과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바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서방의 경제제재는 놀랄 만큼 효과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러시아산 오일과 가스에 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오일 수출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러시아는 군비 마련을 위해 자국산 원유를 할인가격에 판매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유가 폭등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늘어난 탓에 여전히 거액의 에너지 판매 대금이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의 유럽 수출이 급격히 축소됐지만 이건 서방측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푸틴이 스스로 취한 조치이다.

대신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의 산업용 필수 원자재 구입 능력을 마비시켰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사들은 운항을 중단한 여객기들을 해체해 더 이상 해외에서 구입할 수 없게 된 부품을 빼내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러시아의 무역흑자는 푸틴에겐 나쁜 소식이다. 막대한 외환보유고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하는데 필요한 상품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푸틴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갈 터이다.

중국의 경우는 다르다. 중국의 무역흑자는 오랫동안 수면 아래서 들끓던 내부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른 결과다. 외부 관측통들은 중국의 국가소득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일반 대중에게 흘러들고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 지출은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고 지적한다. 대신 중국은 점점 생산성을 잃어가는 투자지출에 저리 융자를 제공함으로써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사채 비중이 커지는 주택시장에 저리 대출이 몰리는 상황이다.


중국은 벌써 상당한 기간에 걸쳐 궁극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게임을 이어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중국의 주택시장은 무너지고 있고, 소비자 수요도 급감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바로 이같은 상황이 중국의 수입을 끌어내리면서 무역흑자를 키운다. 다시 말해 무역흑자는 중국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의 신호다.

중국에 대해 두 가지만 추가하자. 첫째, 실패한 코비드 전략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강경한 태도 역시 국내 경제에 부담을 준다. 중국은 팬데믹을 진정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효과가 낮은 국내산 백신과 가혹한 봉쇄조치에 의존한다.

둘째, 현재 상황에서 허약한 중국의 국내 수요는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에 의도하지 않은 혜택을 준다. 수십 년 전, 세계 경제는 부적절한 수요로 고통을 겪었고, 중국의 무역흑자는 세계 나머지국가들의 구매력을 빨아들임으로써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경제는 부적절한 공급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약점은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좋은 일이다. 떨어지는 중국 내수는 오일과 다른 상품 가격 상승을 억제하면서 글로벌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덜어낸다.

그러면 독재자들과 그들의 무역흑자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무언가?

앞서 지적했듯,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흑자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보여준다.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우리는 지도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누구도 그에게 직언을 하지 못하는 독재정치의 문제를 목격하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부분적인 이유는 러시아의 군사력이 지니는 한계에 대해 그에게 바른 말을 한 주변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코비드 대응이 롤모델에서 경고로 전락한 이유 또한 시진핑에게 그의 대표적 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측근들 모두가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독재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게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보다 우월하기 때문은 아니다. 독재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