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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과 역사의식

2022-08-31 (수) 김광석 한미헤리티지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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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광복절이 있는 날, 그리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달이기도 하다. 광복절은 한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지 기념되고 있고, 뉴욕에서도 여러 곳에서 거행되었다.

한편 일본의 사과를 강조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겪은 피맺힌 피해에 대한 보상 뿐 아니라 인간기본권에 대한 일본의 자각을 요구하는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해방전후사를 보면 자력이 아닌 강대국의 개입에 의해 맞은 해방이었고, 강대국의 개입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타력에 의한 해방이었다 라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상해임시정부가 미국의 OSS와 제휴해 광복군을 포함한 한국인 청년 장준하 김준엽 등을 포함 백명 가량을 선발, 소정의 특수공작 훈련을 받도록 했으나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OSS에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씨도 참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께서는 일제가 항복할 때 무릎을 치며 아쉬워한 것은 광복군이 이 전쟁에 더 깊숙이 참여해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때 항복을 한다면 우리의 주장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잃는 것에 대한 통탄이었다.


김구 선생은 남북을 오가며 각기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지만, 49년 6월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분단이 70년 이상 지속되며, 과거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UN에 각기 독립국으로 등록되었듯이 각기의 나라로 존재하는 것을 타당한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것이 작금의 모습이다.

광복은 빛을 다시 찾은 날, 그렇다면 왜 우리 민족은 빛을 잃어야만 할 역사가 있었는지 돌이켜 볼일이다. 역사를 보면 정조의 개혁이 실패한 후, 조선 왕조가 민생을 살피고 국력을 키우기보다는 당쟁과 남인들의 득세와 타협하며 안위를 선택한 우매함,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아둔함, 심지어 나라를 위해 헌신한 무인들에게 13개월 밀린 녹봉에 겨우 한달치 녹봉을 쌀로 지급하면서 그 속에 겨와 모래를 섞었을 뿐 아니라 양도 반이나 모자라게 지급하다보니, 임오군란은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며 생명의 귀중함을 선포하던 동학이 척외양창의(왜와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국난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킴)를 부르짖으며 나라를 구하려고 하였을 때에 왕권은 일본군을 끌어들여 학살을 자행하였고 민씨 일파의 남인들은 청국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려하였으니 다음해에 청일전쟁이, 그다음 해에 민비가 시해되고, 그 다음해에 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딱한 처지에 처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급기야 1910년 국권을 상실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광복절엔 이 참담했던 우리의 역사를 곱씹어야 하고,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이 민족에게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미국 땅에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이 200여만, 한인이민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과연 이민 1세들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미래를 바라보며 심도있게 분석하고 잘못된 것은 수정해야할 것이다. 한민족 정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후대들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세대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지, 모국의 발전과 통일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민 1세들의 연령이 높아지며 초기이민 선배 많은 분들이 타계하셨다. 남아있는 이민세대가 기초를 다지지 못하면, 후대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가정의 차원에서 단체의 차원에서 이러한 고민과 준비의 유무에 따라 훗날 역사는 평가할 것이다.

<김광석 한미헤리티지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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