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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에 관한 편견·상투적인 생각을 깨버리고 싶었다”

2022-08-26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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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영화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데이빗 헨리 거손 감독

“난민들에 관한 편견·상투적인 생각을 깨버리고 싶었다”

영화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데이빗 헨리 거손 감독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국외로 탈출해 난민신분으로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담은 기록영화‘이야기는 죽지 않는다’(The Story Won’t Die)를 감독한 데이빗 헨리 거손을 영상 인터뷰 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등지에 살고 있는 가수와 화가와 안무가 그리고 시각예술가와 브레이크 댄서 등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을 이용해 저항과 평화와 표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감동적인 작품이다. 시리아는 내전이 시작된 지난 2011년 이래 인구의 절반인 1,300만 명이 조국을 떠나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거손은 배우이자 감독(단편 영화)으로 지난 2016년 미영화협회(AFI)의 학생일 때 만든 단편 ‘올 디즈 보이시즈’(All These Voices)로 아카데미 학생 작품상을 탔다.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는 그의 첫 장편 기록영화다. LA에서 인터뷰에 응한 거손은 차분한 자세로 질문에 신중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난민들에 관한 편견·상투적인 생각을 깨버리고 싶었다”

영화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의 한 장면.



-시리아 내전과 젊은 예술가 난민들의 삶을 만들게 동기는 무엇인가.


“AFI에 다닐 때 시리아 내전에 관한 단편 기록영화를 보고 시리아의 혼란과 난민들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시리아 내전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난민 생활을 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난민으로 태어난 것도 한 동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고향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이 지역은 대대로 끊임없는 전쟁의 피해지역이어서 아버지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다시 돌아왔다 하는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서 나는 피난과 전쟁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 8개의 서로 다른 얘기를 어떻게 균형을 맞춰 엮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는 이들의 얘기를 보다 자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시리즈로 만들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지구상의 난민들에 관해 갖고 있는 편견과 상투적인 생각을 깨버리려고 했다. 난민들은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또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브레이크 댄서와 화가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렇게 서로 다른 예술가들의 미적 의식을 영화를 통해 하나로 통합된 미적 의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예술을 하나의 취미로 생각하면서 그 길로 가려는 자식들에게 “안 돼. 그 건 취미로 하는 거야. 인생을 살려면 보다 진지해야 돼”라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해줄 말은 무엇인지.

“내가 지극히 존경하는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스트릿 아티스트인 JR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짜 직업을 찾을 때까지 예술가이다’라고. 의사나 변호사가 예술가 보다 안전한 삶의 여정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이들과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시간은 오래 걸릴지 모르겠으나 예술이야 말로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며 또 예술 작품은 생명이 길다. 나는 가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우유 통 속에 숨겨뒀다 수십 년 후에 발견된 그림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런 그림들은 미래 세대들이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작용했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하지 마’라고 말하는 부모들에게 ‘당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내 작품은 살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라.”

-종교와 인종차별로 인한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묻는데 당신도 이 같은 학살의 생존자의 손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려서 자라면서 그에 대해 두 개의 얘기를 들은바 있다. 내 할머니의 온 가족은 독가스 실에서 죽었고 그 후 우크라이나로 피난 갔다가 다시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자랐다. 후에 수용소에서 아기를 낳았으나 아기는 얼마 안 가 할머니 품에서 죽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신은 없어. 어떤 신이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니’라고. 그러나 할머니와 비슷한 삶을 산 나의 아주머니는 생존 한 이후 더 종교적이 되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이 저주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것은 축복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은 신을 찾는 길이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은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여정이기도 하다. 내 영화에 나오는 두 명의 무용수들도 하나는 매우 종교적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에 나오는 예술가들 중 어떤 사람은 보다 종교적인 배경을 지녔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 느낀 바는 이들이 삶의 의지를 찾기 위해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런 여정에는 종교도 부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인터뷰를 한 예술가 중 한명이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나는 나 자신을 신으로 만들기로 선택했다. 나는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경험을 사용할 것이다’라고. 이런 선택은 매우 과감한 것으로 내 가족의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하기를 꺼려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젊은 예술가들로부터 그들의 예술적인 관점과 더불어 인간적인 얘기를 얻어낼 수 있었는가.

“나는 그들과의 대화와 토론의 바탕을 우리 가족의 경험을 통해 시작했다. 여섯 살 때인가 일곱 살 때 들은 할머니의 경험을 통해 그들과 세대를 거쳐 진행되어오는 전쟁의 후유증을 이야기 했다. 그 것이 그들과의 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러 면에서 친구가 되었다. 소수의 제작진이 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서로가 실제적으로도 아주 가까이 지냈는데 예술가 중 한 명과의 인터뷰는 그의 베를린에 있는 한 대학의 좁은 기숙사 방에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인간적으로 그리고 흉허물 없이 또 아무 제약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개방적인 면과 약점마저도 감추지 않는 분위기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게 한 것 같다. 예술가들은 이런 개방성과 허점마저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서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카메라 바로 옆에 앉아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잘 생긴 배우이기도 한데 카메라의 앞쪽에서 하는 연기가 그립지 않은가.

“그렇다. 날 쓸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 나는 연기를 아주 사랑하는데 그 것은 감독과는 또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 보다 내면적이다. 물론 연기도 지적인 면이 필요하지만 감독이 매우 정신적인 것이라면 연기는 육체적인 것이다.”

-당신의 영화가 어떻게 하면 지구상의 다른 어두운 이야기들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고무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둡고 참혹한 사실을 보여줄 때 공포로부터 시작하면 사람들이 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고무하는 얘기를 하는 새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 길을 가다보면 때로 절망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지구상의 최악의 상황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이 것을 얘기로 만들어 들려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것이 결국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을 하도록 하는 추진력이 될 것이다. 영화 처음에 나의 아버지가 한 말을 인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버지를 병원에 남겨 놓고 LA로 돌아올 때 내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 할게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요 그 사람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한 그 무엇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창조하면 할수록 우리는 보다 많이 다음 세대를 돕는 것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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