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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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정치

2022-08-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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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꽤 오래된 질문으로 철학에서 정치^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고도 또 때로는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왔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비폭력^이타적이고 친절하다’- 장 자크 루소의 입장이다. 이후 원시부족은 착하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었다. 백인문명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져 어떤 문명에도 오염되지 않은 원시 부족은 고결한 야만인으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이는 몽상일 뿐이다.” 문명과 접촉이 없이 지낸 아마존 강 오지의 야노마뫼 족을 평생 연구한 미국의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이 내놓은 반박이다.


오히려 만성적인 전쟁 상황에서 언제 공격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으로 루소보다는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한 혼돈,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

섀그넌에 따르면 야노마뫼 족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습격이다. 습격을 감행하는 이유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해서인데, 그 대상이 다른 마을에 사는 부족민들이라는 점에서 습격은 대개 마을간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야노마뫼 성인 남성의 45%는 한 사람 이상을 살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들어 많은 연구조사들은 원시부족들의 호전성, 잔인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기래야 고작 돌과 몽둥이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시부족의 전시 살상 율은 첨단 무기로 무장한 문명세계의 현대전쟁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인간 역사의 대부분은 ‘야만의 시대’가 지배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전쟁 시에는 말할 것도 없다. 윗사람의 뜻에 거슬리는 의견을 개진해도 배신자로 낙인 찍혀 때로 처참한 종말을 맞이했던 것이 얼마 전까지의 인간사여서 하는 말이다.

그 야만성을 벗어나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나서부터다. 다양한 의견이 받아 들여지고 열린 토론을 통한 여론형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말이다.


진영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 이런 논리에 매몰돼 진영을 장악한 세력은 진영 내 권력과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배신자로 낙인찍고 매몰차게 잘라낸다. 요즘 한국의 정치풍토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친박’도 모자라 ‘진박’이 나오더니 ‘문빠’에 ‘대깨문’이 등장했다. 그 ‘문빠’보다 훨씬 악성으로 전이된 것이 ‘개딸’같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던가. 이재명을 당 대표로 선출해 방탄 막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반이재명의원들에 대해 야만스럽고 독랄한 공격을 퍼붓는 ‘개딸’들의 맹활약은 ‘대깨문’도 울고 갈 정도다.

이 ‘개딸’들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심지어 ‘내로남불’의 대명사격인 문재인 민주당과도 다르다. 문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바른 말을 하는 위선이라도 보이면서 대놓고 비민주적 독선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이 60년대 중원천지를 뒤집어 놓았던 홍위병과 흡사하다. 반대파는 완전히 제거된 1인인 정당으로 폭주할 위험성이 크다.

윤핵관과 이준석의 다툼으로 지고 새는 국민의힘당 모습도 도토리 키 재기로 보인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20년도 훨씬 전인 1995년 고 이건희 삼성회장이 한 말이다. 그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기업은 1류, 행정은 4류, 정치는 5류도 모자라 6류…,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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