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것은 오래 전에 나왔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그의 개인적 평은 접어두고 이 작품을 통해 인생의 삶을 그린 그의 안목은 탁월하다.
봄은 인생의 유년기로 철없는 시기이고 여름은 성장기로 자칫 욕망에 빠져 허우적 되며 가을은 성숙기로 고난을 이겨내는 성숙을 그렸고 겨울은 반성과 이해의 삶을 그렸다.
봄의 시작은 산중 호수 가운데 암자를 세우고 스님이 어린 동자승을 데리고 노를 저어 암자로 간다. 아이는 스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이는 늘 지루하고 심심하다. 물고기나 개구리 몸을 실로 묶고 돌멩이를 매달아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을 보며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다.
스님은 노하여 동자승의 허리 뒤에 제법 큰 돌을 매달아 잘못을 깨우치게 한다. 심심한 유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시작은 달라 질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동자승은 건장한 소년으로 나온다. 병 치료의 목적으로 수중 암자에 한 소녀가 찾아 온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소녀에게 끌리고 둘은 사랑놀음에 빠진다.
한칸짜리 암자 안에는 불상을 모셔 놓고 낮에는 불당으로 쓰이고 밤에는 침실이 된다. 방 가운데 문을 세워 방을 나누었다. 그 문을 통해 두 방을 오가게 되어 있다. 한 밤중에 소녀가 자고 있는 방으로 넘어가는 소년은 문을 통하지 않고 옆에 터져있는 공간으로 쉽게 넘어 간다. 어쩌면 그 문은 도덕이고 규율이며 법을 상징 했을 것이다.
이들의 탈선을 스님이 알게 되고 소녀를 집으로 돌려 보낸다. 소년은 암자를 떠나 욕망을 쫓아 세상으로 나간다.
가을이 되어 그는 청년의 모습으로 나온다. 머리는 덥수룩하고 눈빛이 날카롭다. 살인을 저지르고 암자를 찾아온다. 스님은 나무바닥에 반야심경을 쓰고 그에게 살인한 칼로 새기게 한다.
형사들이 그를 잡으러 암자를 찾아온다. 밤새도록 법문을 새기며 회환에 지친 그를 데리고 형사들이 암자를 떠난다.
스님은 제자의 잘못을 자신에게 물어 스스로를 태워 열반에 든다.
겨울이 되어서 호수는 꽁꽁 얼고 주인을 잃어버린 암자는 낡고 쓸쓸 하다. 형기를 마친 불자는 장년이 되어 암자를 찾아 온다.
김 감독 자신이 장년의 불자로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불상을 산 정상에 모시기 위해 받침으로 쓰일 맷돌을 줄로 묶어 허리에 매고 상의를 벗은 알몸으로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장면은 처음에는 좀 무모하게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맷돌같은 ‘인간의 굴레’ 를 지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갓난 아이를 안고 암자를 찾아 온다. 여인이 자고 있을 때 불자가 보자기를 벗겨 얼굴을 보려 하자 여인은 조용히 불자의 손을 잡고 말린다. 부끄러운 얼굴 이었을까, 보면 아는 얼굴 이었을까.
한밤중에 여인은 아기를 버리고 얼어붙은 호수를 걸어 나오다가 얼음구덩이에 빠져 허망하게 간다. 불자는 아이를 맡아 키우고 그 아이는 또 다른 인생의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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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