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Do-Nothing Guy)’으로 알려진 남성이 있다. 도쿄에 사는 모리모토 쇼지(38)라는 청년이다. 그는 일종의 대여업을 하는데 대여품목이 특이하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고객의 의뢰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는 서비스를 한다. 한 사람분의 존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독특한 서비스가 일본에서, 한국에서 화제가 되더니 몇 달 전부터는 미국에서도 소개가 되었다. 최근에는 BBC가 짤막한 동영상으로 그의 일상을 소개했다. 동영상을 보면 그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같이 먹거나 마시고,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고, 질문하면 짧게 대답한다. 절대로 먼저 말을 걸지도 않는다. 1회 대여비용은 1만 엔(85달러), 왕복 교통비와 부대비용은 별도다.
오사카 대학과 대학원에서 우주지구학을 전공한 그는 학습교재 출판사 등 직장에서 근무하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그룹으로 일하는 걸 잘 못했다. 직장상사는 “네가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핀잔을 주었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도무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지내던 어느 날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은 꼭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그의 대여업, 일종의 실험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남자, 나를 대여하라’는 내용을 2018년 6월 트위터에 올렸다.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의뢰가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어왔다. 그가 이제까지 맡은 케이스는 3,000여 건.
자신을 대여하는 경험을 토대로 그는 책을 여러 권 냈고, NHK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 일본 TV는 드라마를 제작했다. 말없고 사교성 없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가 약점을 적극 활용하니 오히려 쓰임이 많았다. 이 사회의 소용에 닿은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왜 필요한가. 그의 쓰임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선 짚이는 것은 고독한 군상이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축으로 삼는 현대사회에서 군중 속의 고독은 필연이다. 개인주의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자본주의로 물질적 소유욕을 한껏 발산하며 풍요를 얻는 대신 우리는 단절과 소외를 대가로 치른다. 실적을 올려야 하고 남을 밟고서라도 올라가야 하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북적대는 사람들, 멈출 줄 모르는 SNS 메시지로 삶의 외양은 번잡하지만 내면은 찬바람 일 듯 공허하기 일쑤다.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멋진 식당에 가서 누군가와 식사라도 하고 싶을 때, ‘식사하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기도 불편할 때, 사람들은 그를 고용한다. 멀리 이사를 가는데 기차역에서 손 흔들어 줄 사람 하나 없을 때, 한 여성은 그를 고용했다.
둘째는 인간관계와 소통의 어려움이다. 모리모토가 가장 많이 받는 의뢰는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은 많아도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실연, 이혼, 어떤 실패 등으로 괴로울 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그대로 듣고 공감해주기보다 지적이나 훈계, 비판이 뒤따라서 관계가 오히려 틀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볼일 없는 그를 찾는다.
다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혼자 있는 걸 어색해한다. 같이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선입관이 있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서, 매년 여름철이면 페스티벌에 가는데 함께 가던 친구들과 서먹해져서, 유명식당에 가고 싶은데 혼자 가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를 찾는다.
그가 하는 일을 요약하면 한사람분의 온기와 열린 귀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단순히 누군가와 같이 있음으로써 느끼는 따스함 그리고 내 말에 상대방이 귀 기울여줄 때 형성되는 연결감이다. 알고 보면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에 깊이 내재된 진화의 산물이다.
맹수들 우글거리는 원시의 평원에서 작고 힘없는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비결은 협력이었다. 각자 따로 있지 않고 같이 있으면서 힘을 합친 덕분이었다. 혼자 있다가는 언제 어디서 맹수의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혼자 있는 두려움(Fear of Being Alone, FOBA)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지금도 영향을 미친다. ‘혼자’는 ‘위험!’ 신호여서,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한갑씩 피는 만큼 몸에 해롭고, 고독은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정신질환을 악화시킨다.
한편 원시의 동굴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느끼던 안전의 느낌은 사회적 지지의 필요성으로 우리 속에 남아있다. 누구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온기가 느껴지고 관심과 배려를 받으면 마음이 훈훈해지는 배경이다.
한 동네에 살면 모두가 서로를 알던 지역공동체는 사라지고, 정신적 영적 지주로서 교회의 역할도 약화했다. 마음 붙일 데 없는 외로운 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같이 있어주고 귀 기울여주는 따스함이 아쉬운 시대이다. 각자 누군가 한 사람과만 함께해주어도 세상은 덜 삭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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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