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젊었을 때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 열심히 일을 했었다. 늙어지니,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생’(來生)을 위해서 오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생을 위해서!
부처는, “모든 것은 변한다.”고 말했다. 내 눈앞에 있던 물이 없어졌다고 해서 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물의 형태가 변했다는 것뿐이지, 물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자라면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된다. 갓난아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갓난아이의 형태가 변해서 노인이 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의 형태가 변해서 다른 어떤 것이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연속성! 형태는 변하지만, 없어지지 않고, 항상 존재한다는 것, 이게 불교이다.
부처는 만물은 항상 변해가는 데, 무작정 변해가는 게 아니라, 항상 인연(因緣) 따라 변해간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행동’하고 ‘말’하고 그리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행동·말·생각이 항상 어떤 결과(업, karma)를 낳는다. 그 결과가 우리의 다음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10분 전에, 10분 전도 전생이다. 전생(前生)에 사람을 죽였다면, 살인 행위가 바로 나쁜 업(결과)을 만든다. 나쁜 업 때문에 살인자는 도망을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처럼 한 행동이, 우리가 전생에 지은 업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부처는 말했다. “살생을 즐겨하면 온갖 죄를 받을 것이다. 만일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목숨이 아주 짧을 것이다. 만약 도둑질을 익히면, 후생에는 빈곤해진다. 만약 인간으로 태어나면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즐기면, 후생에, 남의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다”(증일아함경 제51권).
그러면서 부처는 살생·도둑질·음행(淫行)·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죽어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말했다. 물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나에게 생긴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라고 말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도 내 탓이요,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것도 다 내 탓인 것이다. 병에 걸리는 것도 내 탓이요, 어린 나이에 일찍 죽는 것도 내 탓이다. 길을 가다가 총에 맞아 죽는 것도 내 탓이다. 남에게 사기당하는 것도 내 탓이다.
내가 부자로 살게 된 것도 내 탓이요, 가난하게 살게 된 것도 내 탓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내 탓이다. 좋은 아내·남편을 만나는 것도 내 탓이다. 나쁜 아내·남편을 만나서 고생하는 것도 내 탓이다. 미국에 이민 와서 잘 사는 것도 내 탓이요, 못 사는 것도 내 탓이다.
이제 늙었는데, 만약 과거에 못된 짓을 많이 저질렀다면? 부처는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참회하라”고 말했다. 참회하면서 동시에, 남들에게 해(害)가 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후생에 잘 살게 되는 것도, 혹은 못 살게 되는 것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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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