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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 루이 16세,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2022-08-1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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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는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아들이다. 제임스 1세는 원래 스코틀랜드 왕이었는데 엘리자벳 여왕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영국 왕을 겸하게 됐다. 어머니였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가 반역죄로 엘리자벳에 의해 참수되는 것을 본 그는 왕이 된 후에도 만사를 신중하게 접근했고 평화주의 노선을 걸어 종교 전쟁에 휘말려들지 않았다. 그가 스코틀랜드 왕 때부터 장장 57간 왕위에 앉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찰스 1세는 무능하면서 독단적인 ‘왕권 신수설’ 신봉자였다. 왕권은 신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기 때문에 왕의 통치에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일방적인 증세 요구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의회와의 싸움에서 진 찰스는 몰래 외국으로 도주하려다 잡혀 재판에 회부됐으며 결국 1649년 1월 30일 찬바람 부는 런던 거리에서 참수되고 만다. 그는 마지막까지 무죄를 주장하다 죽었고 그의 머리는 효수됐다 시신에 봉합된 후 윈저성에 묻혔다.

찰스 1세와 함께 영국에서 ‘왕권 신수설’을 주장하는 왕도, 목이 잘리는 왕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개인적으로는 비극이었지만 의회 민주주의 확립의 계기가 됐다.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루이 16세는 루이 15세의 손자로 아버지가 일찍 죽고 할아버지마저 죽는 바람에 19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정치적으로 미숙한데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그는 나름 잘 해보려 노력은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미 독립 전쟁 지원에 들어간 빚으로 재정은 엉망이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귀족들에게 세금을 물리려 했으나 반발로 무산됐다.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국민의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 됐고 최악의 흉년까지 겹쳤다. 파리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됐다. 그것이 1789년 7월 14일의 일이다.

이 때까지만도 국민들은 왕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이를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것이 1791년의 도주 사건이다. 국경 근처인 바렌 마을까지 도망가는데는 성공했으나 화폐에 그려진 그의 얼굴을 알아본 시민의 신고로 붙잡혀 파리로 압송됐다. 그 와중에 그의 금고에서 외국과 내통해 프랑스를 공격하려는 내용이 적힌 문서까지 나왔다.

루이는 반역죄로 기소돼 1793년 1월 21일 북풍한설이 부는 파리 한 복판에서 기요틴에 의해 목이 날아갔다. 그의 목은 양다리 사이에 끼어진 채 시신과 함께 인근 묘지에 묻혔다. 이와 함께 1,000년간 이어져온 프랑스 왕조는 끝났고 그 후 왕정 복고 시도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민주주의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과 못난 두 왕의 목을 친 것이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아무리 왕이라도 국민을 억압하고 나라의 안위를 위협하는 인간은 엄벌을 피하지 못한다는 선례를 남겼기에 감히 이들과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은 아직 지도자의 목을 친 사례는 없다. 찰스 1세나 루이 16세 정도의 무능하고 못난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FBI가 플로리다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자택을 급습, 그가 백악관에서 가져온 극비 문서 등 11개 상자 분의 서류 등을 압수했다. 그러자 공화당 내외의 그 졸개들은 일제히 이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라며 무장 투쟁과 FBI 폐지까지 외치고 나섰다. 실제로 한 명은 신시내티에 있는 FBI 빌딩을 공격하려다 사살되기도 했다.

트럼프 변호사들은 트럼프가 가져간 기밀 서류를 돌려달라는 법무부 요청에 모두 반환했다고 답했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트럼프는 기밀 서류 반출을 금지한 ‘간첩법’을 위반하고 거짓말까지 한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는 탈세 등에 관한 뉴욕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440 차례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2016년 힐러리가 이메일 관련 조사를 받을 때 ‘죄가 없으면 왜 묵비권을 행사하느냐’고 비아냥거릴 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트럼프는 이와는 별도로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건을 부추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것은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평화적 권력 이양을 거부한 사건으로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반역과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추종자가 많은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를 분열시킬 우려가 있다며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이는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일뿐더러 전직 왕의 목을 쳐 민주주의를 세운 서양의 전통에도 어긋난다. 수사당국은 트럼프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트럼프와 그 짝퉁들이 정치판에 얼씬거리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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