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의 광복은 미완성

2022-08-12 (금) 노재화 전 성결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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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의 패전과 우리의 해방 77년이 지난 지금, 미완의 광복으로 남아있다. 동시대의 지식인으로서 특히 8월이 되면 심기가 매우 불편하며 무거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역사학자 카(E.H.Carr)는 “과거를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고, 역사가와 그의 사실이 끊임없는 상호작용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주장하였다. 과거를 돌아보고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불법 체결하고 조선을 식민지 체제하에 들어가게 하였다. 1920년대의 다이쇼데모크라시를 지나, 30년대에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며 총력전 체제에 들어간 일본 관동군은 만주를 병참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만주사변(1931)을, 이어서 중일전쟁(1937년)도 일으켰다. 이어서 1941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은 즉시 연합군의 자격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난 후에 도쿄 공습(1942.4.), 사이판 함락(1944.7), 오키나와 함락(1945.4월) 이어서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우라늄 원자폭탄을, 8월9일에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신적 존재로 베일에 가려져있던 쇼와 천황 히로히토는 마침내 인간으로 나와 8월15일 일본의 항복문서를 낭독하고, 9월2일 도쿄만의 미주리함 선상에서 일본대표 외부대신이 정식으로 무조건 항복 서명을 하였다.

일제의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은 태평양 전쟁을 위한 병참기지 역할로 인적 물적 자원을 강제로 공출 당하였고 강토는 피폐해져갔다. 패전과 더불어 항복하고 무책임하게 돌아간 일본 정부는 70년이 넘은 이 시간에도 조선인 강제 연행노동자와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은 미해결 상태이다. 이 피해자들은 한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또한 일본군의 패전과 무장해제로 미군이 접수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분기점으로 하여, 소련 군부는 북부를 점령하고 김일성을 지원하여 1949년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웠다. 남부는 미군정이 통치하다가 1948년 8월15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김일성은 소련군의 지원으로 1950년 6월25일 남한을 침략하여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어버린 최대 민족의 비극이 일어났다. 가까스로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민족분단이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래학자 벨(D.Bell)이 1960년대 탈산업사회의 도래와 베트남 종전을 보고, 그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냉전은 끝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21세기 현재까지도 한반도에서의 냉전은 끝나지 않고, 동서 155마일 휴전선에서 극한의 군사적 대치로 양국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수치이며, 국민들은 심한 전쟁의 공포심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이산가족들의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와 한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어찌 이를 두고 우리는 광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완전한 광복이란, 민족통일을 기반으로 독도를 포함하여 일제로부터 해방 이전의 영토회복과 국제정치 경제학적으로 자주 독립국가의 주권 회복과 경제적 자립에서 찾아야 한다. 둘째로 조선인 강제 연행노동자들과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전에 정신적 물질적 피해 보상 등과 같이 식민지 지배 청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 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노재화 전 성결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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