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상한 이, 수상한 자, 고상한 분

2022-08-09 (화)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크게 작게
이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 여러 사람들중에는 이상한 이가 있고, 수상한 자가 있고, 고상한 분이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하게 태어나거나 약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비정상적인 사람, 보기에 이상한 사람,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말이 어눌하거나, 사람들 앞에 쑥쓰러워하거나, 걷기에 불편하고, 행동이 어수선하게 조급하면서 일상적인 생활이 다른 사람보다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옛날에는 이런 사람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면서 사회적으로 결코 적응할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이상하지만 그러나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 뿐이다. 특별한 것은 다른 것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을 하고 싶어서 태어나거나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으로서 사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약함은 곧 나의 약함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이해함과 너그러움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가진 한 가지 부족함이 나의 이해함으로 서로 상쇄되어 조금도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수평적인 모습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상한 사람외에 또 수상한 사람이 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상식 수준과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수상한 자라고 거리감을 두거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자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양심이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율법과 말씀이 있다. 그런데 수상한 자들은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사랑과 평화보다는 미움과 전쟁을 택하고, 회개와 용서보다는 반항과 증오를 갖고 산다. 그런 자들은 늘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혼자 결정한 사실에 대해서 고집을 부린다. 수상한 자들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수상한 자가 될 수 있고, 가까운 사람이 수상한 자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거나 불편과 긴장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고상한 분이다. 고상하다는 것은 높은 정신적인 가치를 실제로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을 말한다. 고상하다는 것은 사랑과 진리, 정의와 봉사, 청렴과 결백 등 사회적인 발전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역사적으로는 위인이라고 하고, 존경하는 분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고상은 직책과 위치가 높다고 해서 고상하다고 하지 않는다. 고상한 분은 깊은 산속에서 사는 사람, 허리가 굽을 정도로 평생 농사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중에도 있을 수 있다. 고상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존경받는 분이 되기위한 중요한 조건은 희생이다. 그 희생에는 남을 생각하는 희생적인 마음이다. 자기를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126:5)
이상한 이들에게는 너그러운 이해로 포용하고, 수상한 자가 되는 유혹은 멀리하고 고상한 삶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의 삶은 놈(者)이 아니라 분이라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