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법 판결 이후 미국 사회는 패닉에 빠진 상태다. 진보 성향이 강한 북동부와 서부에서는 더욱 낙태권을 강화했고 특히 뉴욕주는 낙태권과 함께 피임권까지 뉴욕주 헌법에 명문화했다. 또한 일리노이와 콜로라도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의 보호처로 마다하지 않고 있어서 미국 중동부와 남동부의 낙태 금지 정책을 강화한 주와 대립의 양상을 보인다.
낙태 금지법이 판결되고 얼마 되지 않은 독립기념일에 시카고에서 총기 난사로 6명이 숨지고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아이도 포함되었다. 5월 말쯤엔 텍사스에서 18세 고등학생이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21명을 숨지게 한 참사가 일어났다.
총 규제에 관한 법은 온갖 이유를 들이대 천지가 개벽을 해도 뒤집혀지지 않게 철통방어를 하고 있다. 수정헌법을 받들어 인간이 가지고자 하는 권리를 이용한 총 규제는 절대 할 수 없다면서 왜, 여자의 권리인 낙태는 법으로 금지한단 말인가? 왜, 아직 생명이라고 보기 힘든 6주 된 아기씨의 권리를 위해 살아 숨 쉬는 여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법으로 심판받아야하는가? 그러면서 세상에 태어나 여섯 해를 정성껏 키워낸 소중한 아이들의 생명은 총으로 파리처럼 내팽개쳐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어릴 적 반공교육의 하나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전교생이 책상 밑으로 들어가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숨소리도 내지 말라고 선생님이 경고하며 한 손에 매를 들고 엄포를 놓으며 감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팽배해진 혼란스러운 시대라 그러한 훈련이 당연시되었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대비 훈련이 아니라 미국의 유치원에서는 그 누군가의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실제처럼 총기에 관한 훈련을 받고 있다. 총소리가 나면 일단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덮는다. 출입문을 책상으로 막아놓고 창문 벽 아래에서 고개를 들지 말고 죽은 듯이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훈련을 한다. 믿기지 않지만 3, 4세 데이케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광경이다.
6세가 아니라 3, 4세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이런 끔찍한 연습을 하는 판에 생명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6주 된 아기씨는 법적으로 보호받게 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맞을까? 6주 된 아기씨의 생명을 붙잡고 논하는 그 시간에 총으로 죽을 수도 있는, 하지만 살아있는 6세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퀴어가 대세가 되어가고 인종 차별을 없애고자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특히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절차들이 간소해지고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 21세기다. 보란 듯이 역행하고 있는 낙태 금지법은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태엽이 거꾸로 감겨 뒤뚱뒤뚱 후퇴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총기와 낙태 문제가 미국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고 있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왜 이토록 암세포처럼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일까?
낙태가 금지된 오늘, 꽃다운 나이의 여자들에게 낙태는 불법이고 죄라는 검은 꽃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낙태를 금지했을 때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자들은 불가피하게 불법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고 병원과 위탁된 범죄에 끊임없이 이용되고 그에 따른 위험의 소지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딸에게도 씌워질지 모를 굴레, 우리의 소중한 딸들에게 여자의 의무와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함께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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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