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7월 7일은 칠석이고 7월15일은 백중이다.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고대로부터 시작된 한국 중국 일본의 명절이다. 사찰에서는 칠석을 불교적으로 받아들여서 불교의 명절인 백중과 함께 중요한 의식으로 정진한다.
칠석에는 나의 마음에 불을 밝히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백중에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 그리고 인연있는 모든 영가들이 악도에서 벗어나 천상이나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해드리고 공덕을 닦아드린다.
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설화는 ‘나와 내면의 영원한 생명의 나가 만나는’ 불교적 의미를 갖는다. 현실의 나와 내면의 참나가 만나는 것을 마음의 불을 밝힌다고 한다. 불교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목표는 ‘참나를 만나는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그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세계는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현상은 인연이 만나 이루어지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모든 현상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변화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만남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만남은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가다 죽는 ‘나’와 내면의 영원한 생명의 ‘나’의 만남이라고 한다.
‘나’와 ‘나’가 만났을 때에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든 것으로 부터의 자유와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분들은 한결같이 ‘참나를 만나는 삶을 살아라.’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참나’는 모든 존재의 뿌리이고 진리는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나를 만나는 삶’이요 영원한 진리가 나투어지는 삶’이라 한다.
이것은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종교나 명상의 가르침과 같은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말에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울분을 토한 다음에 갑자기 나타나는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 “우륵의 가야금은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다”는 것은 외면의 나가 아니라 내면의 나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은 현실의 나(ego)가 바탕이 된 것으로 치우친 것이다.
그러나 ‘내안의 나’에게는 치우침이 없다. 감정에서 벗어나 감정의 소용돌이의 고요한 중심이 되어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산다. 자기 생각에 의한 막힘이나 조작이 없다. 그래서 예술가는 내면의 나를 만나는 무아 무심의 상태에서 뛰어난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사소한 일상 생활에서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이지만, 우리는 ego의 복잡한 생각에 지배되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지못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욕심에 물든 생각 속에서 환상을 쫒기 때문이라 한다.
내안의 영원한 생명의 창조 작용이 자연스럽게 나투어지는 삶이 참되게 행복한 삶이라 한다. 그리고 임윤찬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행복하듯이 우리는 설걷이 하고 마당 쓸고 하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진리를 깨달으신 분들은 말씀하셨다.
<
원공/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