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학의 대부’로 불리는 저명한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 메릴랜드 공공정책 대학원 석좌교수(84)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성장 지상주의’ 경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성장은 현 시대의 우상이 돼버렸다”면서 여기에 따르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장만을 최우선시 한다면 결국은 ‘지는 게임’(losing game)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GDP(실질국내총생산)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각국 정부는 시시각각 나오는 거시 경제지표들에 일희일비한다. 자신들의 국가 경영능력과 능력과 성취를 뒷받침해주는 객관적 수치라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관료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경제제표가 바로 GDP이다. GDP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가치를 생산했다는 얘기가 되고 이는 곧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들 또한 GDP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GDP를 통해 경제정책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GDP가 증가했다면 분명 반가운 뉴스다. 그런데 GDP가 늘고 경제가 성장했다는 발표가 나와도 정작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체감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이유는 거시 경제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왜곡이 없는 통계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양적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질적인 요소들을 등한시하게 되는 것이다. 데일리 교수는 ‘발전’(development)과 ‘성장’(growth)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성장은 덩치가 커졌음을 말해줄 뿐 경제의 건강성 같은 질적인 의미는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GDP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경제활동만을 반영하고 있는 수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사회가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면 그런 비효율성 때문에 GDP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형편없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GDP의 허구성을 일찍이 꿰뚫어 본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존 F. 케네디의 동생으로 1968년 대선에 나섰던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는 캔자스 대학 연설에서 “우리의 국민총생산은 엄청난 액수이지만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광고, 우리가 문을 잠그는데 쓰는 특수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된다”고 꼬집었다.
한참 성장 중인 국가들에는 GDP가 여전히 유효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신체가 자라나는 시절에는 키와 몸무게가 성장을 판단하는 데 기준 수치가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이 수치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키와 몸무게 같은 외형적 상태보다 체질량지수 등 내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수치들이 한층 더 중요해진다.
GDP를 대체할 지표들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형적인 성장이 아닌, 삶의 질이 어떤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들을 만들자는 것이다. GDP 증가율보다 중산층의 비율을 가장 중요한 경제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꼭 이런 지표들이 아니더라도 경제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무언가 새로운 측정방식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숫자가 현실을 가리는 가면이 되어버리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이 나올 수 없게 된다. GDP가 여전히 중요한 경제지표임은 부정하지 않더라도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성장, 즉 발전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