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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48) - 취업을 위한 입사 시험

2022-08-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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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하늘 관문인 덜레스 공항 옆에 있는 기내식 공급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지원하면서 레퍼런스(reference, 지원자에 관한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는 미리 준비했기에 그대로 적어 넣었다. 다음은 입사를 위한 시험(test)을 통과해야 했다. 당시 그 회사에는 한인이 여러 명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분이 한인들의 입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기에 그분을 통해 시험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할 수 있었다.

시험은 인사담당 실무자와 1:1로 진행되었는데, 시험 내용은 딱 두 가지였다. 숫자를 영어로 이해하는지와 두 개의 영어 단어를 써보는 것이었다. 인사담당자가 “나인.”이라고 말하면 그가 보는 앞에서 종이에 ‘9’라고 적으면 되고 그가 종이에 ‘4’이라고 적으면 “포.”라고 읽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스푼’이라고 말하면 그가 보는 앞에서 ‘spoon’이라고 쓰고 ‘포크’라고 말하면 ‘fork’라고 쓰는 것이었다.

시험을 그렇게 치른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설마 들은 대로 시험을 치를까 싶었다. 막상 시험 현장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미한 시험을 치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에 입사한 사람들과 얘기해보았는데 숫자에 관해 100 단위나 1,000 단위로 확장해서 ‘732’를 읽어보라거나 ‘4,259’를 읽어보라는 경우는 없었다. 오로지 10 이하의 숫자만 물어봤다. 쓰는 것도 ‘스푼’과 ‘포크’ 이외의 것을 썼다는 사람도 없었다. 시험은 한결같았다.


그 회사에 취업한 후에 일을 하면서 입사시험을 왜 그렇게 진행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이었던 것 같다. 만성 인력 부족 상태여서 어떻게든 직원으로 채용해야 했기에 어렵거나 까다로운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인력 부족이 얼마나 심했는지 직원이 아는 사람에게 이 회사의 입사를 추천하여 그 사람이 취업 후 일정 기간 근무하면 추천한 기존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할 정도였다.

두 번째 이유는 일을 할 때 그리 높은 수준의 영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입사 후 storeroom(창고, 저장고)에서 근무했는데 음식을 만드는 쪽에서 어떤 재료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 요청하면 요청한 재료를 요청한 수량만큼 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청한 것의 품명과 숫자만 알면 되는 것이다. 기내식을 만드는 쪽에서는 무슨 음식을 어떻게 그리고 몇 개 만드는지에 관한 문서가 실무자에게 전달되었다. 어떤 빵을 사용하고 거기에 어떤 야채가 몇 온스 들어가고, 육류는 어떤 것이 몇 온스 들어가는지 등이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그대로 만들면 된다. 그러니 재료와 재료의 분량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다.

즉 일할 때 현장에서 필요한 딱 그만큼의 영어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월남, 캄보디아, 인도, 이란, 방글라데시, 멕시코, 콜롬비아 등 다양한 나라의 출신 직원들과 일을 했지만 업무상 가장 많이 주고받는 대화는 품목의 이름과 수량, 이 두 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내용을 이해하는지만 알아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 회사에서도 프로베이션(probation) 기간이 있기 때문에 정히 현장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돌려보내면 되는 것이므로 일단 그 두 가지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일을 시작해볼 수는 있는 것이었다.

이 회사 말고도 두 번 더 취업을 위한 시험을 쳤는데 미국에서 취업을 위해 치른 도합 세 번의 시험은 모두 취업 후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하는 일이 정보를 취합해서 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일이 아닌 단순 노무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상급자이자 관리자인 수퍼바이저나 매니저가 하는 일이고 현장 실무자는 따로 생각하거나 궁리할 필요 없이 정해진 기준과 정해진 업무 절차에 따라 맡겨진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딱 그 수준의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었다.

시험까지 통과한 후 출근하게 되었다. 배치된 곳은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storeroom이었다. 항공기 기내식을 공급하는 것은 항공기 이착륙과 관계있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부서가 2교대로 근무했다. storeroom도 2교대로 근무했는데 아침에 시작하는 근무조는 새벽 4시 반쯤 업무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근무시간 8시간에 중간 휴식 시간과 점심 식사 시간을 더해 오후 1시쯤에 업무가 끝나고 그즈음에 오후 근무조가 출근하는 구조였다. 입사 후 아침 근무조에서 배치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한인 라디오 방송국 근무할 때와 다르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미국이 샐러드 보울(salad bowl)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종교였다. 미국에서의 다양한 종교와 그 다양한 종교에 대한 존중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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