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를 첫 손으로 꼽을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어떻게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며 이 시장의 신호를 존중하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필수 요소임을 밝혀냈다. ‘국부론’이 나온지 24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주장은 아직도 대체로 유효하다.
그 다음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로는 칼 마르크스를 빼놓을 수 없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의 양극화를 가져오며 벼랑 끝에 몰린 프롤레타리아가 들고 일어나 혁명을 일으킨 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이상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그의 예언은 빗나갔지만 자본주의가 빈부 격차를 벌릴 것이란 분석은 맞았고 아직도 세계 곳곳에 그 추종자들이 남아 있다.
세번째로 중요한 경제학자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일 것이다. 마르크스가 사망한 1883년 태어난 그는 마르크스처럼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불황이 왔을 때 재정 적자를 겁내지 말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 회복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6년 나온 그의 ‘고용, 이자, 통화에 관한 일반 이론’은 이런 주장을 집대성한 책으로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루즈벨트의 ‘뉴 딜’은 물론이고 닉슨의 가격 통제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경제 정책은 상당 부분 그의 이론에 바탕을 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닉슨 입에서 “우리는 이제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나 70년대 이후 그의 명성은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실업은 동시에 증가할 수 없다. 인플레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오르는 것인데 그럴 때 기업은 직원을 더 고용해 물건을 더 많이 만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실업이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장기간 고 인플레와 고 실업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의 이론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 이 때 나온 것이 밀튼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는 상품에 비해 돈이 너무 많이 풀려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플레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
이 이론 추종자 중 한 명이 폴 볼커였다. 1979년 카터가 그를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하자 그는 프리드먼 이론에 따라 돈 줄을 조이기 시작했고 연방 금리를 20%까지 올리자 1980년 15% 가까이 치솟았던 물가는 1983년 3%로 떨어졌다. 볼커는 일약 인플레를 잡은 영웅으로 떠올랐고 그와 함께 프리드먼의 주가도 급등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던 케인즈의 명예는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다시 회복됐다. 대공황의 근본 원인이 FRB가 제 때 돈을 풀지 않아서임을 공부한 벤 버냉키는 아낌없이 달러 수도꼭지를 틀었고 그 덕에 미국과 세계는 제2의 대공황을 피할 수 있었다. 불황이 왔을 때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생각이 옳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 발 경기 침체가 발생하자 2008년의 기억이 생생했던 연방 정부와 FRB는 돈을 푸는데 전력질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최악의 사태는 피해 갔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40년만의 고 인플레가 그것이다. 한 마디로 풀어도 너무 푼 것이다. FRB는 지난 주 연방 금리를 다시 0.75% 포인트 인상했고 연말까지 두세 차레 더 올릴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했던 추가 경기 부양안도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인플레 예측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현금과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의 합계인 M2라며 이 수치가 13개월 후의 인플레 율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인 도널드 러스킨은 최근 월스트릿저널 기고를 통해 M2의 성장이 2020년 4월 시작돼 2021년 2월 피크를 이뤘으며 핵심 인플레는 13개월 뒤인 2021년 5월 가속화돼 2022년 3월 피크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플레의 근본 원인은 미국 정부가 6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코로나 피해 보전 비용으로 미국인의 은행구좌에 넣어 줬기 때문이며 지급이 끝난 올 5월 현재 M2 총량은 코로나 이전보다 6.6%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후 13개월이 지난 2023년 6월이 되면 인플레는 2.3%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찌됐든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기의 부침은 케인즈와 프리드먼 명성의 등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경제적 진리의 일면을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인즈와 프리드먼의 이중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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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