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머리 굴리는 자들의 승리
2022-07-30 (토)
정혜선 / 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
한국말에서 자주 쓰는 속어적인 표현들 중에 “잔머리를 굴린다”는 말이 있는데 보통 “얕은꾀를 부린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요즘에는 “꼼수를 부린다”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미리 계산된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원칙을 어겨가면서 편법을 생각해내려고 머리를 쓰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 칼럼의 제목에서 쓴 ‘큰 머리 굴리는 자’라는 부분은 내가 지어낸 ‘잔머리 굴리기’의 반대 개념이다. 즉 ‘큰 머리를 굴린다’는 표현은 자신에게 솔직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이기적인 계산없이,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머리를 쓴다는 말이다.
내가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는 계기가 된 것은 최근 6월말과 7월초에 연이어 터진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과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수상 소식이다. 나는 이 뉴스들을 접하자마자 마치 내가 상을 탄 양 흥분했고 무엇보다도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그 전의 어떤 수상자들한테서도 못 느껴본 깊은 감동이었다. 그럼 이런 나의 반응은 어디에서 온 걸까? 우선 이 수상자들이 각자의 분야에 입문하게 된 흥미로운 배경 때문이었다. 즉, 이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엄친아 또는 금수저가 아니었을 뿐더러 일반적인 기준보다 늦게 우연한 계기로 자신들의 분야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로 나를 깊이 감동시킨 두 수상자들이 공통점은 자신들의 성취가 소중한 인간관계를 토대로 가능했음을 겸허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한 인터뷰 기사에서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은 스승인 손민수 교수가 “내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셨다”고 하면서 최연소 우승의 영예를 사사한 스승과 나누었다. 마찬가지로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허준이 교수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너무나 잘 만났어요”라고 11개의 난제를 풀어낸 기념비적인 성취를 자신의 탁월한 인복에 돌렸다.
마지막으로 이 두 수상자들이 공유한 결정적인 ‘감동 바이러스’는 자아를 100% 버리고, 개인의 영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진선미를 추구해왔다는 점이다. 선한 협업을 기반으로, 한 사람은 음악을 통해서, 다른 한 사람은 수학이라는 논리를 통해서, 자신들이 발견한 최고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들이 누리는 역대급 수상의 영예는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큰 머리 굴리는 자들의 승리’였기에 샴페인 잔이 깨지도록 마주치면서 이들을 축복하고 싶다.
<정혜선 / 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