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LA 한인타운의 버몬트 거리를 지나다 거대한 벽화를 보았다. 고층빌딩의 벽면 전체를 화폭으로 삼은 벽화에는 “우리 남매는 부모님의 아메리칸 드림(My Brother and I Are My Parents’ American Dream)”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지난해 남가주 공영방송 미국의 초상(PBS AMERICAN PORTRAI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정된 이미지이다. 팬데믹과 인종혐오로 혼란스러웠던 2020년을 마감하고 2021년을 맞으며 PBS는 미국의 현재 모습을 짚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남매가 부모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것은 이민 1세대의 모습이다. 자녀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모국을 떠나 낯선 땅에 와서 언어장벽과 인종차별에 부딪치며 모진 고생을 하는 것은 이민자들의 보편적 경험이다. 1970~80년대 이민 온 한인 1세들의 모습 역시 대체로 그러했다. 덕분에 우리의 2세들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부모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세들의 아메리칸 드림 완성이다.
이민 2세대의 성공 스토리는 미국역사의 한 축을 이뤄왔다. 전국 과학 공학 의학 학술원의 2017년 보고서에 의하면 이민 1세대는 미국 태생보다 정부에 부담이 되지만 2세대는 미국 재정과 경제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집단에 속한다. 이민 후 한 세대만 지나면 미국사회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이민 정서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날로 거세지고 있다. “바이든의 국경 개방정책 때문에 불법마약이 마구 들어와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오하이오 상원선거의 한 공화당 후보는 주장했고, 애리조나의 한 공화당 정치인은 “이민은 전면적 침략”이라며 이민규제를 촉구했다. 그런 그들은 이민과 무관할까. 아메리칸인디언이 아닌 한 모든 미국인은 이민자 후손이다.
미국에는 3번의 거대한 이민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 이민그룹은 1880년 즈음 아일랜드와 독일 등 북유럽에서 온 이민자들. 도널드 트럼프 가족이 그 케이스이다. 그의 조부 프레드릭 트럼프는 1885년 독일에서 이민왔다. 두 번째 이민물결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등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세 번째는 1980년 전후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빈곤국가 출신들이 이민물결을 주도했다.
반이민 진영의 주장을 새겨보면 1세기 전 유럽태생 백인들의 이민은 미국에 유익했지만 지금의 중남미나 중동 출신 유색인종들의 이민은 국가에 부담만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인종차별이다. 과연 그럴까?
스탠포드 대학의 랜 아브라미츠키 교수와 프린스턴의 리아 부스탄 교수는 1세기 전 이민자들과 지금 이민자들의 삶을 연구했다. 각각 1880년부터 1940년까지의 센서스 기록 그리고 1980년 이후 연방국세청 세금납부 기록을 토대로 양측을 비교했다. 그 결과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민자들은 빠르게 미국사회에 동화하며, 2세가 성년이 되면 1세 부모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잘 산다.
아울러 연구팀은 흥미로운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가난한 이민 1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비슷하게 가난한 미국태생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보다 중류층 이상으로 계층이동 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1978~1983년 출생자들이 성공해 30대 중반 부유층에 진입한 케이스는 아버지가 이민자인 경우 15%, 미국태생인 경우 9%로 차이가 현격했다. 여전히 빈곤층에 머문 케이스는 전자의 경우 21%, 후자는 29%에 달했다. 이민가정 출신들이 경제적 사다리의 상승이동을 월등하게 잘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편 미국에서 자녀는 부모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런 추세가 꺾이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 서른 살 미국인들 중 92%는 부모가 같은 나이였을 때보다 돈을 더 잘 벌었다. 하지만 2010년 서른 살이 된 1980년생 중 부모보다 잘 사는 경우는 절반에 불과했다. 나이 들수록 이 세대는 대체로 부모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데, 예외인 집단이 있다. 이민가정 자녀들이다. 유독 이들이 성공하는 현실적 이유 중 하나는 거주지역. 미국 태생 주민들은 지역경제가 쇠락해도 고향을 떠나지 않는 반면 이민자들은 경제적으로 번창하는 지역을 골라서 정착하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가 많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이민 2세를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력은 ‘나는 부모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인식이다. 부모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정신적 부담과 함께 목표를 갖게 된다. 그리고 기어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이들을 성공에 이르게 한다.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에 제공하는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자녀들, 이민 2세대이다. 이민 초기 너무 가난해서 정부에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한 세대만 지나면 2세들이 보답을 한다. 반 이민은 한 세대를 못 보는 근시안적 시각이다. 인종차별, 총기폭력 때문에 미국이 더 이상 이민 오고 싶은 나라가 아니게 되는 순간 미국은 쇠락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있어야 미국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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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