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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 걸리는 병”

2022-07-20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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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야기’(Une Affaire De Femmes, 1988)는 오래전에 봤는데도 잊히지 않는 영화다. 1940년대 나치 점령기,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 마리라는 여자가 두 아이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이웃집 여인이 낙태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이를 돕게 되는데 뜻밖에 그녀의 민간요법이 성공하자 소문이 퍼져나가 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에는 독일 점령군에게 성폭행당한 아낙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리는 불법 낙태시술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무능력한 남편을 무시한 채 연하의 청년과 불륜에 빠져든다. 어느 날 그녀는 아이가 여섯 있는 가난한 여성에게 낙태시술을 해주는데 그 결과로 여인이 숨지고 슬픔에 빠진 남편마저 기차에 뛰어들자 아이들은 천애고아가 된다. 때마침 마리의 남편은 복수심으로 아내의 불법시술을 경찰에 고발하고, 마리는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그리고 낙태를 살인으로 판단한 국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기막힌 연기를 보여준 이 영화는 프랑스 역사의 암울했던 시기에 일어났던 실제사건을 다룬 문제작이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마리가 극형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으나 국가는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본보기로 그를 처형시켰다.


또 다른 프랑스 영화 ‘레벤느망’(Happening, 2021)은 1963년이 배경이다. 작가를 꿈꾸는 영민한 대학생 안은 예기치 못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에도 프랑스에서 낙태는 불법, 하지만 학업을 포기할 수 없는 안은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다가 모두 실패하고 임신 12주째에 불법 낙태시술소를 찾아간다. 당시 프랑스에서 불법시술을 받다가 실패하여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 여성은 가파른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의사가 그 사건을 ‘유산’이라고 진단하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낙태’라고 기록하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안은 두 번의 시술이 모두 실패하여 정신을 잃고 구급차로 실려가는데 응급실에서 비몽사몽간에 의사가 내리는 진단을 듣는다. “유산입니다.”

안을 아꼈던 문학교수가 도대체 왜 학업이 엉망이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만 걸리는 병에 걸렸어요. 여자를 집에 있게 만드는 병이에요.”

프랑스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고백록 ‘사건’(L‘evenement)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무대를 현대 미국으로 옮겨보자. 2020년 영화 ‘결코 드물게 가끔 항상’(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은 17세 여고생 어텀이 겪는 임신과 중절을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어텀은 약을 한움큼 삼키기도 하고 배를 사정없이 때려도 보지만 결국 또래 사촌과 함께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간다. 펜실베니아주에서는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의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면 될 줄 알았던 시술이 늦어지면서 돈도 없고 잘 데가 없는 두 소녀는 지하철이나 게임 아케이드에서 시간을 보내며 뉴욕거리를 방황한다.

‘결코, 드물게, 가끔, 항상’은 낙태시술소에서 카운슬러가 묻는 질문들에 네가지 중 하나로 답하는 항목을 뜻한다. 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어텀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그녀의 파트너가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많은 경우 원치 않는 임신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비롯해 미국의 여러 주요영화제에서 작품, 극본, 연기상을 수상한 이 영화 역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이 탁월하다.

이 영화들이 가진 공통점은 주인공의 얼굴 클로즈업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놀라고 두렵고 불안하고 복잡한 여자의 내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카메라웍이다. 따라서 여배우 한사람이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데 이자벨 위페르, 아나마리아 바톨로메이, 시드니 플래니건의 연기가 모두 기막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임신한 여성들이 그토록 고민하고 전전긍긍하고 고통을 겪으며 사선을 넘나드는 동안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신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서 발생했지만 그 결과와 책임은 온전히 여성만의 것이다. 이 이상한 생식의 세계에서는 피임도 여자의 몫이고, 임신과 낙태도 여자의 사건이고, 출산할 경우 육아도 거의 전적으로 여자가 도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의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남성들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만일 임신과 출산이 남자의 몸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그랬다면 아마 아주 아주 오래전에 낙태는 간단한 혹 하나 떼어내는 것처럼 합법적이고도 안전한 의료시술의 한 부분이 되어있을 것이다.

지난 6월24일 연방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시대를 역행하는 판결이 나온 후 낙태이슈에 대한 각계의 찬반과 성토, 시위가 지금도 매일 이어지고 있다. 21세기 미국에서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만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견해를 가진 여성 법조인과 정치인이 더 많이 나와야할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그 출발점이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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