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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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비판말라

2022-07-19 (화)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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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창고에는 오래 보관된 어떤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 오던 길, 물지게를 지고 돌계단을 오르던 산 1번지 이웃의 모습 등이 곧 그런 것들이다. 앞뒤 시간은 모두 잘려 나가고 사진 한 컷으로만 남아 있다. 그렇게 장기 저장돼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기억들이기도 하다.

영화도 줄거리는 날아가 버리고 한 두 장면만 남는 것들이 있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주연 배우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마주보던 얼굴이 클로즈업되던 신도 그 중 하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 핀 사랑, 서양인의 큰 코가 연인간의 키스에는 성가신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순간이기도 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조나단은 미국에서 간 의용군, 마리아는 게릴라 부대에 있던 현지 여성이었다. 2차 대전 등 지난 100년간 많고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50개가 넘는 나라에서 대규모 외국인 의용군이 참전한 것은 스페인 내전과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 말고는 없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의 프랑코 파와 이에 맞선 공화파 간의 전쟁이었다. 당시 세계를 휩쓸던 폭넓은 이념 스펙트럼을 말해 주듯 다양한 성향의 의용군들이 스페인으로 몰려와 반 파시스트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공화파의 국제여단은 53개국, 3만여명의 의용군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의용군 중에는 미국, 캐나다에서 온 사람도 있었지만 사회민주주의자, 아나키스트, 특히 국제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이 모집한 공산주의자가 많았다. 국가로는 소련이 가장 적극적인 지원 세력이었다. 영국, 프랑스 등이 파시즘 국가인 독일과 불간섭 조약을 맺은 데다 당시 국제기구였던 국제연맹도 불간섭 기조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소련은 비행기, 탱크, 야포에다 몰래 정규군을 파견하고, 전비로 500톤이 넘는 순금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지금 미국의 역할을 그 때는 소련이 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공화파가 패하면서 점차 우파 독재로 변모한 프랑코 1인 독재는 스페인을 36년간 철권 통치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에는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의 작가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이 의용군으로 참가했다. 파시즘의 확장을 막는 것이 정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 명분으로 네오 파시즘 척결 운운하며 호도하려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러시아 당국은 얼마 전 자신들이 집계했다는 우크라이나 참전 의용군 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64개국에서 온 의용군 6,000여명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의용군이 2만명에 이른다는 우크라이나의 ‘뻔뻔한 거짓말’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같은 발표를 한다고 밝혔다. 의용군 가운데 2,000명 가까이는 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갔고, 그 보다 더 많은 의용군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런 러시아에는 외국인 의용군이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는 중국이나, 접경국인 맹방 벨라루스의 청년들이 러시아측 의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또 다른 인접국 폴란드에서 2,000명 가까운 의용병이 우크라이나로 달려간 것과 비교된다. 러시아가 부끄러움을 아는 나라라면 스스로 이 같은 발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안무치와 역사의 아이러니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의용군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자기 돈을 내고, 자기 장비를 들고 전장으로 향했다. 이들이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뜻은 고마우나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의용군 중에는 조지아의 전직 국방장관,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60대 안보 전문가, 70대 베트남 전 참전 군인도 있다고 한다. 의협심 만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는 500여명이 참전해 그 중 2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의용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한 젊은 간호사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요. 하지만 내 목숨이 우크라이나 인들의 목숨 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미주 한인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나 생업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로 간 자원봉사자들은 있다. 젊은 의사와 음악가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오가며 피난민을 실어 나르고, 생필품 공급 등 여러 구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리해지면서 일상화되는 느낌마저 있다. 점차 무관심이 커질 수 있다. 의용군에 대한 시각은 처음부터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녹슨 창을 꼬나 든 채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쯤으로 여겨 지기도 했다. 관심에 목마른 종자를 뜻하는 ‘관종’으로 부르며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짧은 시를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의용군 함부로 비판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사소한 불이익이라도 감수해야 할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하며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당하게 사는 것인지, 우크라이나로 간 의용병들을 보며 잠시 생각하게 된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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