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무대로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우체국이다. 우체국은 편지를 부치는 곳. 셀폰이나 이메일은 물론 전화도 드물던 시절, 사랑이나 그리움 혹은 안부를 전하는 방편은 편지뿐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할 용기가 없거나 절절한 감정을 전화로 전할 수 없을 때도 사람들은 편지를 썼다.
그러니 우체국은 얼마나 가슴 벅찬 장소였겠는가. 이곳의 나를 저곳의 당신에게로 연결시켜주는 곳, 시인들은 우체국을 무대로, 우체국을 제목으로 시를 썼다.
지금 중장년 세대가 과거 연애편지 쓰며 단골로 인용했던 유치환 시인의 ‘행복’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는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시는 끝나고, 연인들은 마지막 문장을 편지에 인용하며, 그걸 받아 읽으며 가슴이 터질 듯 했다.
이해인 시인은 ‘우체국 가는 길’이라는 시를 썼다. “세상은/ 편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 설레임 때문에/ 봉해지지 않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내가 뛰어가는 길”이라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평범한 길의 특별한 의미를 표현했다.
젊은 시절 안도현 시인의 우체국은 바닷가에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 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고 그의 시 ‘바닷가 우체국’은 시작된다.
그리고 시인은 썼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라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작업을 대신해도, 작업을 인간보다 더 잘할 정도로 똑똑해도, 이런 시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을 기계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존재. 오래 못 보았던 누군가의 전화, 느닷없는 이메일, 그냥 ‘하이!’ 하며 안부를 묻는 텍스트… 모두가 ‘네 생각이 난다’는 신호이고, 신호는 보낸 사람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누군가가 생각나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그리고 자주 연락하라고 연구진은 추천한다.
최근 ‘성격과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는 피츠버그대학 카츠 경영대학원의 페기 리우 교수가 주도했다. 연구팀이 5,900여명을 대상으로 13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기에 친구인 사람 그리고 사이가 좋기는 하지만 가깝다고 할 수는 없는 지인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의 반응을 평가했다. 그 결과를 보면 연락을 받은 사람이 느끼는 반가움, 기쁨, 고마움은 보낸 사람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크다.
그러니 너무 느닷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바쁜 사람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는 수고도, 우체국까지 가는 수고도 필요 없는 시대에 무엇을 망설이는가. 그냥 생각날 때마다 텍스트를 하자. 받는 사람의 하루가 즐거워질 것이다. 그렇게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