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장례식이 지난 12일 도쿄내 사찰 조죠지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역대 최장수 총리로 향년 67세이다.
아베는 지난 8일 참의원 선거 유세활동을 하던 중 일본 자위대 출신 남성의 사제 총 저격으로 목과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빠져 전 재산을 헌납하자 먹을 것이 없고 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다고 한다. 이 종교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미국이 강요한 평화 헌법이 아닌 일본의 자주 헌법을 제정하고자 개헌을 추진해왔었다. 전범국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인 1946년 2월 제정된 일본 헌법은 9조에 전쟁포기(1항)와 군대 불보유(2항)을 규정해 평화헌법이라 불린다. 태평양 전쟁 승전 후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이 다시는 침략전쟁을 벌일 수 없도록 개헌안 초안 작성을 지시했었다.
아베의 개헌헌법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한국, 중국 등 주변국 반발이 극심했고 일본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국제정세로 여론이 달라진데다가 아베 피살 이틀만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 기시다 후미오 총재는 신속한 개헌 의지를 밝혔다.
이번 암살 사건으로 일본인에게는 지극한 애국자인 아베의 우상화가 이뤄질 수 있고 그의 유지를 받든 보수 세력이 득세할 수 있어 앞으로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살아생전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15년 한일 외교부장관 위안부 합의, 징용 조선인피해자 배상을 명령한 한국대법원 판결 보복 차원으로 한국 수출규제 조처 등등 한일관계의 경직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거물 정치인 아베는 사적인 원한으로 인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이같은 암살(暗殺) 행위는 비겁하고 안일하며 비열하기까지 하다. 사상, 이권, 정치, 군사적 이유로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을 비합법적으로 몰래 살해하는 행위인 암살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깊다.
자신과 정치적 사상이나 견해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암살한 총격사건은 해방 후 한국에서 좌우익이념 혼란 속에 내노라하는 정치인들이 줄줄이 희생된 바 있다.
1945년 12월30일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송진우가 암살됐고 1947년 7월19일 극한 좌우 갈등에 통합파인 여운형이 암살됐으며 1947년 12월2일 한민당 정치장관 장덕수가 피살됐다. 1949년 6월26일에는 민족의 지도자 김구가 경교장에서 현역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됐다.
미국에서도 1963년 11월22일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텍사스 댈러스에서 카 퍼레이드 도중 총에 맞아 숨졌고 1968년 4월4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암살됐다. 모든 암살이 그렇듯이 배후는 모호하고 미스터리하다. 진범이 밝혀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채 역사에 묻혔다.
역사적으로 암살은 특정 집단에 의한 조직적인 암살이 많다. 하지만 의분에 찬 개인이 과격한 이상주의나 영웅심, 나름의 정의감 혹은 사소한 개인의 복수심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암살당한 사람은 황당하고 억울하고 분하지만 가장 아쉬운 것이 자신이 살다간 뒷정리를 못하고 가는 것이 아닐까.
과거 인디언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이 빠지고 공동체에서 더 이상 역할이 없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러 갔다. 벌판에 나가 앉아있으면 얼마 후 죽음이 찾아왔고 그 자신은 동물들을 통해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죽음 준비교육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말이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살라’이다. 매순간 죽음을 의심함으로써 비로소 매 순간의 삶이 더욱 가치있어 진다는 중세의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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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