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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

2022-07-15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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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 등 작곡가 알렉스 헤프스

“영화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등 작곡가 알렉스 헤프스

아카데미 남자주연상(포레스트 위타커)을 타고 작품상 후보에도 오른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의 삶을 다룬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의 음악을 작곡하고 골든 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오른‘만델라:롱 워크 투 프리덤’의 음악을 비롯해 60여 편의 영화와 TV작품의 음악을 작곡한 영국 작곡가 알렉스 헤프스(50)를 영상 인터뷰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연주한 헤프스는 3년 전 사고로 왼손에 큰 골절상을 입어 피아노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가 회복해 다시 피아노와 가까워졌다. 그는 최근에 자신의 영화음악의 주제를 피아노로 연주한 앨범 ‘서든 라이트’(Sudden Light)를 출반했는데 그는 이 음반을 자신의 재생의 음악적 여정이라고 말했다. 헤프스는 LA의 산타모니카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질문에 차분하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의 한 장면


-‘서든 라이트’를 출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3년 전에 왼 손을 크게 다쳐 근 1년간 피아노연주를 중단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앉아 내가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내가 작곡한 영화음악들의 주제를 두드려 보았다. 하루에 몇 분씩 내가 작곡한 영화들인 ‘터칭 더 보이드’나 ‘만델라’의 주제를 쳤는데 그저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즐기자는 것 외에는 별 다른 의도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피아노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일단의 음악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음악들을 단순히 편곡하기보다 피아노로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음악은 일종의 유전인자 같은 것으로 나는 이번에 그 것에 보다 자유롭고 여유 있는 공간을 주어보자는 의도로 음반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어느 한 영화 음악의 멜로디를 작곡하기 위해서 해당 영화와 어떻게 특별한 관계를 맺는가.


“그 문제는 모든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고심하는 것이다. 훌륭한 멜로디가 영화 음악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것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도 오래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스’를 생각할 때 그 독특한 음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영화와 영화음악은 유전인자의 분리할 수 없는 두 부분이다. 내가 영화음악을 작곡할 때는 감독이 무엇을 생각하고 성취하려고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과 얘기를 나눈다. 음악에 관한 얘기보다는 드라마와 인물과 무드에 관해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 것들이 음악적 용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한다. 때로는 영화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는데 등반에 관한 영화인 ‘터칭 더 보이드’의 음악을 작곡할 때는 산을 생각하고 그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악의 주제도 그에 따라 높아졌다 낮아졌다 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어느 영화의 음악을 작곡할 때 그 영화와 관련된 제반 사회적 요건도 고려하면서 작곡하는지.

“그 것은 내 생애 내내 생각하는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내가 ‘만델라’와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과 자전거 경주자인 랜스 암스트롱에 관한 영화 ‘프로그램’과 같은 여러 편의 전기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의 주인공들의 실제 인물들에 대한 존경의 요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인데 특히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면 더욱 그렇다. 이런 영화들의 경우 음악에도 그런 존경의 뜻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전기영화의 음악을 작곡할 때면 음악을 얘기 서술과 분위기에 충분히 맞도록 작곡하면서도 결코 도를 지나치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음악도 영화처럼 흥미 있고 생생하고 또 신나야 하지만 이와 함께 진실의 요소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만델라’의 음악을 작곡할 때는 만델라가 아직 살아 있을 때였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의 딸과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실로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

-어려서부터 멜로디가 눈앞에 나타나는 식으로 음악에 심취했는가.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은 다 음악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어려서는 그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난 어려서부터 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난 음악을 사랑했지만 그 보다는 영화광이었다. 어려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영화에 나온 음악을 피아노로 두들겨보곤 했다. 12살 때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경품 추첨으로 ‘E.T.’의 음악 카세트를 받고 그 것을 계속해 들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이 영화의 얘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카세트를 수 없이 틀어놓고 들었다. 이 것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열광하는 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땐 그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 다음 분위기 전환으로 보다 어둡고 무거운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는 식으로 선택하는가.

“내가 선택 한다기보다 작품이 날 선택한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그러나 그 질문에 동의한다. 나는 다양성을 좋아한다. 최근에 몇 편의 강렬하고 정신을 소모시키는 작품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 후 지금 막 코미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고 빛을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아주 다르고 좋은 일이다. 두뇌에도 좋다. 영화음악 작곡가가 멋진 까닭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나를 전기영화와 같은 드라마의 단골 작곡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미라 나이르 감독이 만든 BBC 시리즈 ‘어 수타블 보이’의 음악을 작곡하면서 작고한 인도의 저명한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샨카르의 딸로 역시 시타르 연주자인 아누쉬카와 함께 여러 곡의 음악을 작곡했다. 새 사람들을 만나 다른 스타일의 영화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일이다. 다양성이야 말로 내 생애의 큰 부분이다.”


-어렸을 때 무슨 음악을 들었으며 어떤 작곡가가 당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

“난 어려서 정규학교지만 특별히 음악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작은 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에는 음악에 재주가 뛰어난 아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난 그 안에 포함되진 않았다. 난 그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마구 두드리는 것을 즐겨해 선생님이 실망했다. 난 어려서 클래식을 많이 들었는데 특히 14살 때쯤에는 말러에 심취했었다. 그의 음악은 아이들이 듣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난 영화음악을 정말로 사랑했다. 내게 음악의 불꽃을 타오르게 만들어준 것은 1977년에 들은 존 윌리엄스의 ‘스타 워즈’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내 머리가 폭탄을 맞아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다. 난 지금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영화를 볼 때 화면에 몰입하는가 아니면 음악에 귀를 기우리는가.

“영화가 정말로 좋아 나를 휘몰아간다면 음악은 잊어버린다. 그리고 음악을 너무 많이 듣게 되면 영화가 별로 신통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내를 위해 작곡이라도 했는지.

“우리는 10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다. 그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다. 그리고 헤어졌다가 다시 서로를 찾았다. 우리의 역사는 장구하다. 난 바이올린 독주곡을 작곡하긴 했지만 아내를 위해 작곡하진 않았다. 그 것은 너무나 막중한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아내를 위해 작곡을 해야겠다. ‘서든 라이트’의 음악을 만들 땐 제일 먼저 아내에게 들려주면서 작곡했다. 아내가 좋은 의견을 주어 그에 따라 만든 곡도 두어 개 있다. 앨범의 음악을 다 지은 후에 음반에 곡이 실릴 순서대로 피아노를 치면서 아내에게 들려주고 의견을 물었더니 아주 좋은데 곡의 순서가 틀렸다며 고쳐주었다. 그래서 그의 조언대로 음반에 실릴 곡의 순서를 바꾼 뒤 아내에게 다시 들려주었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정말로 좋아요“라고 말했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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