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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허준이를 꿈꾸며

2022-07-14 (목)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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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앨리스 먼로의 작품 “너무 많은 행복”의 주인공은 소피아 코발레프스키라는 실존인물로 19세기 말 활동한 위대한 수학자이다.

그녀는 1850년 포병장교의 딸로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코흘리개 시절 벽지로 붙어있던 아버지의 대학시절 미적분학 공책을 보면서 언젠가 이걸 다 이해할거야 다짐하며 조금씩 스스로 깨쳐나갔다. 나이가 들어 수학의 즐거움을 깨닫고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였으나 여성은 러시아에서 법적으로 대학생이 될 수 없었다. 당시 가장 수학에서 앞서 있던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자 하여도 이도 불법이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한데 소피아는 혁명을 꿈꾸는 출판업자와 위장결혼을 하여 독일로 떠난다.

독일에서도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 입학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소피아는 도전에 나선다. 당대 독일의 대표적 수학자 칼 바이어슈트라스에게 찾아가 학생으로 받아달라고 사정한 것이다. 몇 차례 무시하던 바이어슈트라스는 귀찮았던지, 어려운 연구과제들을 담은 종이를 한 장 주며 답을 내보라며 쫓아버렸다. 얼마 후 소피아는 이 문제들의 독창적인 해답을 적어 바이어슈트라스를 찾았고, 캐물어가며 꼼꼼히 확인한 후 감동을 받은 바이어슈트라스는 소피아를 비공식 학생으로 받아들여 일요일 오후를 소피아를 지도하는데 할애하였다. 일주일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으면 차분차분 대화하며 그 숨은 의미와 현주소, 미래까지 배울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당대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수학은 이렇게 배워야 가장 잘 배울 수 있다. 오일러도 베르누이에게 이렇게 배웠으며, 현재도 전세계 수학과 박사과정에서 학생과 지도교수는 매주 면담시간에 차분히 소근대며 험준한 지성의 히말라야를 오른다.


지난 화요일 허준이 교수가 4년에 한번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수학자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했다. 허준이 교수도 소피아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것처럼, 여러 차례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어 수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중고등학교 수학시험은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들을 기계적으로 푸는 능력 위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 생각해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수학 본연의 정신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허교수도 이런 시스템에서 본인이 수학에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과학기자가 되기 위해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 여러 해를 보내고 나서야 수학자의 길을 발견했고 이때부터 일취월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허교수가 수학에 맛을 들이기 시작할 즈음, 때마침 서울대에 노벨상급 석학초청사업이 생겼고,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헤이스케 히로나카 교수를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모시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찾았으나 난해한 강의에 금방 떨어져나갔고, 당시 잃을 것이 없었던 허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실과 연구실을 자주 찾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수학자들의 대화에서는 명제나 증명, 계산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유래, 철학과 정신, 관련된 사람들의 노력과 눈물처럼 책이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얘기들이 훨씬 유용하다. 이를 통해 공중을 떠돌던 개념과 명제들이 자신의 살과 피가 되어 흡수되는 것이다.

소피아가 바이어슈트라스를 통해 성장한 것처럼, 허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와의 많은 느슨한 대화를 통해 막 싹트기 시작한 수학의 싹이 줄기가 되고 굵어졌다. 그렇게 몇 년 후 그 줄기에서 가지가 생기고 열매가 맺혀 오늘의 국가적 경사가 된 것이다. 모든 위대한 가르침은 친밀한 대화를 통해 일대일로 전승된다. 물론 반드시 히로나카 교수이었어야 했던 것은 아니다. 한가히 지내던 히로나카 교수가 우연히 허교수에게 필요한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다.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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