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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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의‘유정(有情)’

2022-07-13 (수)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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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중앙서관(中央書館)에서 발간한 춘원(春園) 이광수의 대표작 전집 12권 중에서도 흙, 무정, 유정, 사랑 등이 대표작이 아닐까 한다. 전에 읽었다곤 하나 전혀 생각이 아니 나는 게 정상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다. 사람의 야릇하고도 복잡한 심정을 묘사함에 ‘유정’만한 게 또 있을까 한다.
선배 겸 친구이던 잘 나가던 교장 선생님 최석과 또 그의 친구이며 1910년 기미년 독립운동 전후에 명망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남백파(본명 남상호 南相灝)는 텐진(天津)감옥에서 출옥 후 병원에서 병사 전 아내와 딸인 여주인공 남정임(南貞姙)을 이 소설의 해설가에게 유언으로 맡긴다. 남정임의 아버지 백파 남상호는 당시 중국의 유명한 지사들과 교유하며 비분강개하며 시와 글을 짓고 다닌 분이다.

인간의 감정기복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춘원의 글의 묘사력, 마력을 살펴보자. “최석과 남정임이 주고받은 서신, 세상에서 아니 최석의 아내와 딸 순임마저 이 둘의 관계를 불륜으로 치부하는 오해와 불신, 시기, 분노를 표출함을 보고는 세상인심에 넌덜머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의 유언 대로 그 모녀를 조국에 데려왔으나 필자가 옥살이 3년을 마치고 집에 오니 그동안 친구부인은 죽고 열두 살밖에 아니된 정임에 대한 박대는 아내와 딸 순임으로부터 말이 아니었다. 똑 부러지게 반듯하고 명석한 정임과 자식이나 그렁저렁한 순임과는 비교가 아니 됨에 늘 집안에 분란이 가시질 않는다.”

“더 나아가 아내의 눈에는 정임이가 점점 자라는 것을 무심하게 보지 못하였던 것! 학교 성적이 딸 순임보다 좋다는 것은 둘째 정임에 대한 일종의 불안과 질투, 여자의 본능이라고 치부하기엔 엄청난 충격적 현실!”
“‘그럴 것 없이 당신이 정임을 데리고 집을 하나 따로 얻어 나가 살라고’...이쯤 되면 갈 때까지 가려는 부부관계가 아닐까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부부관계의 끝은 과연 어드메일까? 금혼(金婚)의 해로(偕老)를 했지만 각방을 쓰며 노년을 보내는 부부도 애정은 무슨 애정, 윤리와 의리로 산다 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소설의 내용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다. 최석 교장도 루머의 희생물이 되어 학교도 사직(나쁘게 얘기해서 쫓겨나)하고 아무도 없는 세상으로 가 절연, 심지어 죽음까지도 생각하며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근처로 가 움막집을 짓고 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

그 때 그동안 철이 든 친딸 순임의 억척으로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을 때 정임과 최석의 친구가 천신만고 끝에 함께 그 움막집에 막 다달았을 때 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얼음장처럼 바이칼 호수의 겨울을 맞이한다는 의리, 존경을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최석과 남정임, 철이 든 친딸 순임, 보통 이상도 이하도 아닌 최석의 아내, 여자로서 응당 가지게 되는 오해와 질투….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애련스런 소설‘유정’을 읽으며 춘원의 구성과 묘사력에 다시 한 번 감복하는 바이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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