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목사가 있다. 볼티모어 출신의 가우처 목사(Rev. Dr. John Franklin Goucher, 1845-1922)이다. 가우처 목사는 1845년 펜실베이니아주 웨인스보로에서 태어나 1868년 디킨슨대학(Dickinson College, PA)을 졸업 후 사업가가 아닌 감리교출신 목사가 되었다.
그가 21년 동안 볼티모어 지역에서 목회하는 동안 15개의 교회를 세우며 미 서부지역에 175개 교회 건축을 위한 재정을 지원했다. 특별히 1885년 볼티모어 타우슨에 위치한 가우처 대학(Goucher College, 당시 볼티모어 여대) 설립에 많은 기여를 하며 1890년부터 1908년까지 2대 총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을 1907년부터 1920년까지 6차례나 방문하여 당시 고종의 윤허를 받고 서울과 평양, 인천 등지에 교육과 의료사역을 위한 학교와 병원 부지 구입에 헌신하였다. 왜냐하면 교육과 의료사업 그 자체가 선교에 속하는 활동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가우처 목사는 1883년 당시 한국선교를 위해 그 다음해까지 2차례에 걸쳐 총 5천불을 기부하게 된다. 한국에 온 최초의 여성 선교사이자 이화학당(현, 이화여대)과 시병원(정동병원)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 1832-1909) 여사가 1885년 가을, 교육과 의료 부지 7천평의 비용이 670불이라 보고 하였음을 볼 때 당시 가우처 목사가 한국선교를 위해 기부한 5천불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를 알 수 있다. 그 후에도 그는 한국 외에도 중국과 일본, 인도 등에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25만불 이상을 기부하며 해외선교의 발판을 마련했다.
가우처 목사는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며 한국선교의 기지를 마련한 조선 기독교 선교와 고등교육의 모태를 제공한 실제적인 선교 참여자였다. 1926년 한국 감리교 연회에서는 당시 종로교회(현 중앙교회)를 가우처 기념교회로 지정, 증축을 결의하고 전국 교회가 동참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가우처 목사가 발탁해 면접하고 후원해 한국에 파송받은 아펜젤러(H.G. Appenzeller, 1858-1902)선교사는 1901년 필라델피아를 방문해 한 모임에서 한국선교의 아버지는 볼티모어출신의 가우처 목사라고 말했다.
가우처는 1917년 배재학당 창립자 아펜젤러 기념관 기공식에 참석하여 목포에서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열정과 헌신을 기억하며 한국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믿음의 유산과 발자취는 현재 볼티모어소재 문화재 교회인 러블리 레인 연합감리교회(Lovely Land United Methodist Church, Baltimore)박물관에 잘 소장되어 있다.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4년마다 열리는 9차 한인 세계선교대회가 워싱턴에서 열리게 된다.
바라고 소원하기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곳곳 음지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시는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다시금 선교적인 비전을 위해 하나가 될 때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한국선교의 아버지, 볼티모어 출신 가우처 목사의 한국을 향한 첫 사랑, 첫 열정을 기억하고 그의 헌신적인 사랑과 선교적인 열정을 이어 지역사회와 개교회주의, 교단, 교파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 곳곳 병들어 신음하는 생명을 살려내는 선교적인 비전을 위해 삼심(초심, 열심, 뒷심)의 자세로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매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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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 워싱턴 하늘비전교회 목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