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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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 손길

2022-07-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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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로나 팬데믹 3여년 만에 베어마운틴 호숫가에서 열린 야유회에 참가했다. 런치 도시락을 먹고 보물찾기 놀이도 하니 마치 학창시절 소풍을 간 기분이었다. 모인 장소 바로 옆 나뭇가지에 매달린 보물찾기용 주황색 리본은 금방 찾을 수 있었고 30여명 회원 모두 하나씩 갖고 갈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10달러 내외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컵받침, 노트, 양념통, 바구니 등이었지만 서로 누가 무엇을 뽑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곶감에 한국 빵에 커피까지 준비하고 30여개 모두 다른 선물에 다른 포장까지, 그 정성이 눈에 보였다.

그 다음주 토요일은 교회의 한국학교 종료식에 가서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오랜만에 들었다. “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한국말 노랫소리가 신선했다.


가장 압권은 점심식사였다. 뒤뜰에서 직접 키운 한국 상치와 깻잎 샐러드, 떡을 넣은 미트 볼, 아이들을위한 간장 국수, 어른들을 위한 김치 국수, 학창시절 양은 도시락 반 크기의, 모서리가 동그란 커다란 감자전에 바나나 셰이크까지 먹을 것이 그득했다.

손자손녀 학습 발표회를 보러갔는데 먹어도 되나 망설이다가 나중에야 먹기 시작했는데 하나 하나 먹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상치의 흙을 털어내고 일일이 씻고 고춧가루 하나 목에 걸리지 않게 김치 소스를 만들고 감자를 깎고 갈아서 트레이 가득 전을 붙여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싶었다. 먹는 내내 아침부터 학생들과 학부형 점심 준비하느라 땀 흘린 그 노고를 생각하니 절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음식을 만들어 낸 부엌이 궁금했다. 지하 식당 옆의 부엌을 슬쩍 들여다보니 커다란 냄비와 들통이 올려 진 개스 렌지와 조리대가 보였다. 에어컨이 있어도 몇 시간을 불 앞에서 일하자면 엄청난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한인사회 단체나 모임의 행사마다 뒤에서 일하는 이들의 땀과 눈물이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공공기관이나 교회는 섬머 스쿨을 대부분 7월초에 시작하여 6~7주간 진행한다. 멕시코나 파라구아이 등으로 장단기 선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또한 뉴욕시티의 식사 배달 서비스 프로그램 (City meals on wheel)은 독거노인들에게 생명수와도 같다. 구호단체에서 기부 품목을 분류하고 식품을 배부하는 일, 보육 서비스, 고등학교 멘토링 프로그램, 숙제 및 과외 지원, 그밖에 재능기부를 하는 봉사자가 필요하다.

한인사회에도 노인들을 위한 따뜻한 점심배달, 24시간 핫라인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가 있어 다행이다.


한인들은 해외자원봉사에도 열심이다. 남미 대륙 곳곳은 물론 몽골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예루살렘까지 한국인 봉사자가 없는 곳이 없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도움의 손길이 끊어진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군부 쿠데타 치하의 미얀마 등 지구촌에 재난 현장은 무수하다.

한편, 자원봉사자들은 한결같이 “남을 도우면서 내가 도움 받았다.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 고 말한다. 다른 이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내가 기쁘고, 몸을 고달프게 움직이니 더욱 건강해지기도 한단다. 자신의 삶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굳이 해외를 나가지 않더라도, 이웃 저소득층에 밑반찬 나눔 봉사, 주방자원봉사 및 주차장 자원봉사, 관심과 대화가 필요한 환자와의 면담에 열심인 손길이 많다.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참으로 고마운, 따스한 손길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손길이다.

젊어서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런 봉사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손길이 보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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