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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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송 당할까?

2022-07-02 (토) 이영묵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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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성들이 툭 하면 성적 희롱을 당했다며 고소하는 것이 다반사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그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말을 해도 요즈음에는 고소를 당하는 일도 많다.

당시 여자들이 명동을 거닐다가 희롱한다는 일본말로 ‘히야까시’를 당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와서 ‘내가 그리고 못 생겼나’하고 눈물을 흘렸으나 이제는 고소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꽤나 많이 변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휴. 어쩌면 나는 다행이었어.’란 생각이 들며 가벼운 미소가 지어진다. 좀 오래 되었지만 객기를 부리던 시절 한 식당 여직원에게 농담을 한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소위 글쟁이로 소설을 썼다고 할까? 그날 식당 주문을 받으려고 온 웨이트리스에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봐요. 내가 좀 심각한 이야기를 할 터이니 잘 들어봐요. 내 아버지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요. 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간다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연락선을 타려고 했는데 마침 태풍으로 배가 며칠 떠나지 못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난봉꾼인 우리 아버지가 기다리는 동안 동래 온천장 기생집에 한번 가보자 하며 생전 처음 갔었는데 그만 그날 처음 나온 애기 기생에 홀딱 반한 모양이에요. 그날 호기롭게 유학 갈 돈을 써가며 기생 세계에서 첫 날밤이라고 하는 소위 머리를 얹어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살림을 차리려 했는지 동래에 처박혀 버린 모양이었소. 나중에 할아버지가 동래에 내려와서 아버지에게 유학이고 뭐고 다 집어치워라 하시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합디다.

이런 이야기를 그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병석에 누워서 나에게 어머니 몰래 나직이 이야기하시었는데 끝머리에는 ‘내가 듣자니 그 기생이 동래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나중에 딸을 낳았다.’라고 들었는데 혹시 내가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그 기생 이름이 춘생이라고 했지요. 물론 춘생이란 진짜 이름이 아니라 기적에 올린 이름이겠지만 말이요. 그런데 왠지 당신을 보자마자 무언가 자꾸 무슨 인연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동생 같은 생각이 든다는 말이요. 물론 내가 당신을 기생 딸이라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좌우간에 설명할 수 없지만 공연히 마음이 이상해진단 말이요. 뭐 당신은 마음에 짚이는 것이 없소?”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났는가 하면 그 웨이트리스도 역시 프로인지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었다. “대답하기 복잡한 우리 집안 이야기에요. 묻지 말아주세요. 단지 나도 공연히 손님이 남 같지 않네요. 뭐 그냥 누이 동생이라고 부르세요.”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그 식당에 가면 그 웨이트리스가 나를 ‘오빠’라고 불렀고 나는 ‘동생’하며 포옹을 하는 쇼를 하곤 했다. 물론 이것저것 서비스 음식도 많이 제공 되었고, 반대로 팁도 좀 두둑이 주곤 했다.

한국에서 한 대통령 후보가 여배우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선거 기간 중 줄곧 망신을 당했다. 또 서울시장, 부산시장들이 여자문제로 자살을 하거나 시장에서 쫓겨나고 또 지금은 젊은 여당 대표가 성상납을 받았다 어쩐다 하면서 아주 시끄럽다. 근간에 내 주위에 별생각 없이 사랑하니 좋아하니 말하다가 구설수에 올라 점잖은 사람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았다. 문득 소위 글쟁이인 내가 장난삼아 벌인 행위가 이제까지 아무런 말썽이 없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 웨이트리스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를 기생의 사생아라고 망신을 주었고 나를 포옹하면서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로 껴안았다고 고소를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영묵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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