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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 결정이 몰고 온 우려들

2022-07-01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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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에 낙태 열풍이 몰아쳤다. 20세기에 다 정리된 줄 알았던 낙태권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근 50년 전인 1973년 연방대법은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며 낙태권을 인정했다. 여성의 평등권 확립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이 판례를 지난 24일 연방대법이 뒤집었다. 낙태는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라고 판시하며 낙태에 관한 법적결정은 각 주 정부와 의회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낙태는 모든 사람의 피부에 와 닿는 사안은 아니다. 남성에게 낙태는 ‘물고기와 자전거 사이’만큼이나 멀고, 여성이라도 가임기가 지나면 둔감해진다. 자신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사안을 선의나 이념 등 머리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백인남성들이 세운 이 나라에서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등 소수계가 동등한 권리를 얻는데 수백년의 피나는 투쟁이 필요했던 배경이다. 연방대법관들이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여성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지는 의문이다.

가임연령(15-49세)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계획에 없던 임신은 때로 삶 자체를 흔드는 중차대한 일이다. 평생 합법적 권리였던 낙태권이 하루아침에 폐기되면서 이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나다. 대법 판결 이후 미 전국은 보수진영의 환호와 진보진영의 반대시위로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대법의 이번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첫째는 역사의 진행방향을 거스르는 역행의 결정이라는 점이다. 연방대법은 역사적으로 많은 판결들을 뒤집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1954년 연방대법은 공립학교 흑백분리 교육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렸다. 이는 ‘분리하되 평등하다’며 학교 내 인종차별을 정당화한 1896년 대법 판결을 근 60년 만에 뒤집은 결정이었다.

대법이 이전 판례를 뒤집을 때는 과거 인정되지 않던 권리를 새롭게 인정할 때였다. 20세기를 통과하며 미국사회에는 인종이나 성별, 성적취향과 무관하게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각이 생겨났고, 대법은 이전의 판결들을 뒤집으며 이 사회의 힘없는 자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들을 만들었다. 역사는 그렇게 전진했다.

이번에 연방대법은 소수계로서 여성이 동등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던 권리를 다시 빼앗았다. 역사적 퇴행이다.

다음, 이번 판결로 연방대법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민들은 전통적으로 연방대법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깊었다. 대법의 결정을 지엄하신 분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 낙태권 무효화 결정과 관련해서는 성인의 56%가 반대의사를 표했다(NPR-PBS 여론조사). 냉철한 법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런 시선에 힘을 보태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임기 중 닐 고서치, 브랫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세 명의 (극)보수 대법관을 지명했고, 이들의 목소리가 이번 결정에 한몫을 했다. 그러므로 낙태권 폐기 공로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트럼프는 선전하고 있다.

세 번째 우려스런 점은 극으로 치닫는 분열상이다. 트럼프 시대 이후 보수/공화 진영과 진보/민주 진영은 연방의회 안에서조차 서로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갈라졌다. 당장 이번 판결을 두고도 민주당은 10명 중 9명이 반대하는 반면 공화당은 4분의 3이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은 기다렸다는 듯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강력 제제할 방침이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민주당 주들은 낙태 피난처를 자처하며 여성의 낙태권 수호를 위해 싸우겠다는 태세이다.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네 번째,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건 낙태권 폐지로 곤경에 처할 수많은 여성들의 앞날이다. UC 샌프란시스코의 턴어웨이 연구(Turnaway Study)는 낙태 관련 미국 최대의 연구로 꼽힌다. 낙태 시술소를 찾은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5년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원하던 낙태를 한 경우와 거부당한 경우 여성의 삶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여성들이 낙태를 원하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 타이밍, 파트너와의 불편한 관계, 기존 자녀에 대한 책임 등이다. 원하는 대로 낙태를 한 경우 여성들은 학업이나 취업 등 인생계획을 실천하며, 미래에 긍정적이다. 반면 낙태를 거부당한 경우 여성들은 빈곤과 폭력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높다. 소득이 연방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확률이 거의 4배, 실직할 가능성은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가정폭력 파트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신과 자녀가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살곤 한다.

삶에 대해 결정권을 갖고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질 때 사람은 비로소 독립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갖는다. 임신과 관련, 정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면 여성은 아직 온전한 독립체로서 평등에 이르지 못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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