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농사는 아무나 짓나

2022-06-27 (월) 김관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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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인들 중에는 낙향의 꿈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정년퇴직을 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하는 게 낙향의 꿈을 꾸는 이들의 속마음이었다. 실제로 여유가 있는 작가들은 서울 근교에 집을 마련하여 텃밭을 꾸미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건조한 아파트 생활을 하는 도시인일수록 무작정 땅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인간의 회귀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랬다. 평생 호미자루 한 번 들어본 적 없지만 언젠가는 꽃밭도 가꾸고 텃밭도 마련해 농사를 지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 아마도 유년 시절의 기억 탓이었을 게다. 이북 고향 집 뒤꼍에는 꽤 넓은 텃밭이 있었다. 필시 외할머니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가꾸었을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와 가지며 호박이 자랐고 꽈리가 소녀의 꿈처럼 붉게 익어갔다, 담장을 따라 키가 자란 사탕수수며 옥수수의 단내를 맡으며 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늦은 나이에 이민이 결정되자 서점과 종묘사를 돌며 텃밭 가꾸기 안내 책자와 각종 푸성귀 씨앗을 사 들였다. 아이들이 마련한 텃밭에서 자란 푸성귀로 우리 식탁은 매일매일 청정 야채로 풍성하리란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깟 농사쯤 문제도 아닐 것 같았다. 여기는 호박, 저기는 상추, 또 저쯤에는 열무와 얼갈이…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하노라면 눈부신 초록이 가득한 기름진 밭이 눈에 펼쳐지는 거였다. 녹색의 밭을 배경으로 밀짚모자 눌러쓰고 면장갑 낀 농부다운 모습으로 사진을 팡팡 찍어서 고국의 친구들에게 보내야지, 하는 야무진 꿈도 키웠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지? 어디선가 들었는지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생각하여 틈만 뜨면 텃밭으로 나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농사는 대부분 실패하여 기대치에 반도 미치지 못했다. 텃밭 가꾸기 안내 책자는 나 같은 초짜에게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당연히 농작물에도 생육조건이 있을 테지만 나는 물만 열심히 주면 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어디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한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녀 양육을 농사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대인관계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남녀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농사를 짓듯이 혹은 화초나 나무를 가꾸듯 정성을 다해야 그 인연이 오래 간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김관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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